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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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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시간: 약 4~6시간
복용 방법 및 주의사항
1 파우치를 성관계 15~30분 전 입에 넣어 삼킵니다
하루 1개 이상 복용 금지
기자 admin@seastorygame.top
에드워드 블레이크는 1980년대 중반, 분자생물학-유전공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기법을 활용한 유전자 검사를 법의학에 접목한 선구자적인 미국 법의학자다. 그는 어느 과학자보다 앞서 저 기술을 전수해, 새로운 법의학 기술을 경계하는 보수적 법조계를 설득하며 사법 정의를 구현하고 또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그에게 PCR 테스트 등 법의학 증거는 가장 순결하고 또 순결해야 하는 궁극적인 진실이었다. 그의 법의학 연구소 겸 컨설팅 회사 Forensic Analytical Crime Lab 사진.
바다이야기고래출현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은 1990년 10월 출간됐다. 하지만 복제 공룡 모티브가 처음 등장한 건 10여 년 전인 78년 IPC매거진이 발행한 SF만화 ‘저주받은 지구(The Cursed Earth)’에서다. 만화는 크라이튼처럼 구체적인 복제 방법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DNA 복제로 탄생한 육식 공룡들이 놀이공원에서 탈출해 주인공 손오공게임 의 모험에 스릴을 더했다.
1953년 DNA 구조가 규명된 뒤 57년 최초의 DNA 중합(복제)효소(polymerase)가 발견됐고, 60년대 말 70년대 초 DNA 합성 및 접합-재조합 이론과 기술이 잇달아 탄생했다. 70년대 일부 과학계와 상당수 대중은 마치 신의 설계도를 쥔 듯 고무돼, DNA의 비밀만 캐면 생로병사의 비밀과 개인의 릴게임가입머니 행동,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에 주목했다. ‘애실로마 회의(Asilomar Conference, 1975)’ 즉 DNA 조작-연구의 실질적-윤리적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DNA 복제에는 많은 기술적 난관이 있었다. 핵산 끄트머리에 결합해 DNA 중합효소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핵산 조각인 모바일바다이야기 ‘프라이머(primer)’를 먼저 합성해야 했고, 복제 단계마다 효소를 새로 넣어줘야 했다. 단백질 성분인 효소가 복제 첫 단계 즉 DNA 이중 나선구조를 분리(변성)하기 위해 가하는 열로 인해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저 난제 때문에라도 공룡을 복제하려면 공룡이 산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78년 만화와 90년 소설 사이,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분자생물학의 결정적인 진전 중 하나인 ‘중합효소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이 등장했다. DNA 전체가 아닌 연구에 필요한 일부를 자동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복제-증폭하는 기술.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고열 온천에 서식하는 호열성 세균에서 추출한 효소, 즉 ‘Taq 중합효소’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합성되면서 효소의 열 취약성 문제도 해결됐다. PCR의 등장이 크라이튼에게 영감을 주었겠지만, DNA 특정 영역의 복제 기술로는 ‘인젠’의 과학자들처럼 수백만 쌍의 프라이머가 동시에 효율적으로 작용해 엄청난 길이의 DNA를 통째로 복제하진 못한다.
어쨌건 현대 생물학은 PCR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오늘날 PCR은 거의 모든 생물학 관련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된다. 에이즈(HIV)와 인플루엔자, 코비드 등 감염병 진단서부터, 수많은 유전질환 조기진단 검사, 유전자 복제와 발현 연구, 고생물학과 진화 연구, 그리고 법의학-과학수사.
PCR기법은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에 의해 1985년 탄생했다. 분자생물학의 판도를 바꾼 그 기술 특허를 회사는 91년 3억 달러에 매각했지만, 그가 받은 보상은 보너스 1만 달러였다. 그는 93년 노벨상 시상식 전날 선물 받은 휴대용 레이저 포인터로 스톡홀름 호텔 창가에서 시민들을 비추다 저격수로 오인받아 경찰 조사를 받는 해프닝을 빚은 일화가 있다. 2009년 TED 강연 당시의 그. 위키피디아.
그 기술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생명공학회사(Cetus Corp.) 연구원 캐리 멀리스(Kary B. Mullis, 1944~2019)에 의해 1985년 탄생했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진단 기법을 연구하던 그는 DNA 전체를 번거롭게 대조하는 대신 해당 유전자가 포함된 DNA 일부만 선택적으로 복제하면 훨씬 효율적이라 판단, 특정 구간 DNA 복제에 필요한 프라이머만 사용해 중합효소로 복제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의 아이디어는 회사 연구진이 별도로 분리 추출해낸 내열성 ‘Taq 중합효소’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실용화됐고, 멀리스는 그 공로로 199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멀리스의 회사 빌딩에 우연히도 에드워드 블레이크(Edward T. Blake, 1945.7.31~ 2025.8.6)라는 한 법의학자의 연구소(FSA)가 함께 입주해 있었다. UC버클리에서 법의학을 전공한 블레이크는 분자생물학적 법의학 기법들-혈액형이나 단백질 분석-에 정통한 학자였다. 건물 복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Cetus 연구진과 담소하던 중 최신 성과를 듣게 된 그는 여느 과학자보다 발 빠르게 그 기법을 전수받았다.
1984년 11월 펜실베이니아에서 만 92세 남성 조셉 클라이(Joseph Kly)가 심한 탈수와 기아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그에게 돈을 받고 그를 돌보던 이웃 부부를 3급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계약상의 의무, 즉 간병 및 음식 제공 서비스를 이행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며 노인의 계좌에서 3만 달러 이상의 돈도 빼돌린 혐의였다. 사건은 민법상의 계약 위반을 형법상의 살인죄로 기소한 드문 예여서 사회적 주목을 끌었다. 재판 과정에서 사인의 핵심 증거였던 노인의 장기 일부가 다른 시신의 것과 바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매장된 지 1년이 지난 클라이의 시신 DNA와 부검 샘플 DNA 대조작업을 블레이크에게 의뢰했다. 당시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PCR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법의학자였던 그는 86년 재판에서 해당 샘플이 클라이의 것임을 입증했다. PCR 검사가 활용된 최초의 형사 사건이었고, PCR의 위력 즉 심하게 부패-훼손된 DNA로도 주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일깨운 사건이었다. FBI를 비롯한 미국 각주 경찰 당국이 DNA 수사 및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현대 과학수사의 ‘게임 체인저’라 불리는 PCR을 선구적으로 도입해 O J 심슨 재판 등 수많은 재판에 결정적으로 간여하고, 사형수를 포함한 수많은 수감자에게 자유와 명예를 되찾아준 에드워드 블레이크가 별세했다. 향년 80세.
2023년 12월, 한 사건에 대한 뉴욕 법원의 유죄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며 시위를 벌이는 'Innocence Project' 회원들. 지금까지 수감자 근 400명의 무죄를 입증해 그들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시킨 'Innocence Project'의 창립 1등공신도 블레이크와 그의 법의학이었다. Innocence Project 사진.
DNA 검사를 법의학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은, 간발의 차이로 블레이크보다 앞선 영국 유전학자 알렉 제프리스다. 그는 1983년과 86년 영국 레스터셔 일대에서 일어난 10대 소녀 연쇄 강간 살인 사건 수사에 참여, 84년 자신이 개발한 ‘ DNA 지문’ 검사로 시신의 몸에서 검출된 정액 DNA와 유력 용의자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인근 마을 17~34세 남성 약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 대규모 자발적 DNA 대조작업 끝에 87년 9월 진범을 찾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제한효소 절편길이 다형성(RFLP)’ 기법이라 불리는 그의 방식은 다량의 온전한 DNA가 필요한 데다 절차도 무척 까다로워 한 건을 분석하는 데만도 약 한 달이 걸렸다. 반면에 블레이크의 PCR 기법은 어지간히 부패-훼손된 DNA로도, 체액 흔적이나 체모 한 조각 등 극미량으로도 불과 1~3시간이면 검사가 가능했다.
1977년 시카고 교외에서 일어난 10대 여성 납치 강간 사건의 범인으로 79년 20세 청년 게리 닷슨(Gary Dotson)이 검거돼 25~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증언과 정액 혈액형이 유죄 근거였다. 사건 약 8년 뒤 피해자가 당시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번복 진술의 신뢰성을 무시하며 닷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변호인단은 블레이크의 PCR 검사로 무죄를 입증했고, 닷슨은 만 10년 옥살이 끝에 89년 8월 재심으로 석방됐다. PCR 검사로 석방된 최초의 기결수였다.
84년 메릴랜드주 9세 소녀 강간 살해 혐의로 한 해병 예비역(Kirk Noble Bloodworth) 청년이 체포됐다. 목격담 몽타주와 닮았다는 게 주된 유죄 근거였다. 1급 살인혐의로 85년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86년 항소심에서 검찰의 증거 은닉 사실이 드러나 무죄로 풀려났다가 재심에서 다시 사형을 선고받은 기구한 죄수였다. 수감 중 DNA 검사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변호인단을 통해 블레이크에게 도움을 청했고, 9년여 만인 93년 사형수로선 최초로 누명을 벗었다. 진범은 ‘콜드히트(cold hit)’ 즉 DNA 데이터베이스(CODIS) 대조작업을 통해 2003년 밝혀졌다. 그렇게 블레이크는 사형수를 포함 50여 명의 누명을 직접 벗겼다.
인권변호사 배리 쉑(Barry Scheck)과 피터 뉴펠드(Peter Neufeld)가 누명을 쓴 재소자 구제 단체 ‘이너선스 프로젝트(IP, Innocence Project)’를 92년 창립한 배경에도 블레이크가 있었다. IP는 블레이크 등과 협력하며 지금까지 사형수 21명을 포함, 수감자 379명(2024년 6월 기준)의 무죄를 입증했다. 뉴펠드는 2000년 ‘뉴요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야구 역사상 3할대 타자는 여럿 있지만, 최강 타자는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다. (법의학 분야의) 테드 윌리엄스가 에드 블레이크다.”
에드워드 블레이크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평범한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이혼 후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UC버클리 물리학과에 입학했다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법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68년 졸업했고, 76년 범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 카운티 보안관실 범죄학 연구소 일을 거들며 실무도 익혔다. 졸업 후 한동안 법의학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78년 자기 회사(FSA)를 설립, FBI와 지역 경찰-보안관실과 협업하며 경험과 명성을 쌓아갔다.
법의학자에게 형사 사건의 유-무죄는 과학적 증거 유무로 갈리는 흑백의 세계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로스쿨 명예교수인 올리버 C. 슈뢰더(Oliver C. Schroeder)에 따르면, 당시 경찰 범죄연구소 책임자들은 경찰이 원하는 특정 결과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예사로 받았다. “그런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들은 과학이 아니라 자신의 직장에 충성하기 때문”에 아무리 PCR이 확실한 기법이라고 해도 의심이 따를 수 있었고, 실제로 우려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블레이크의 완고함은 그에 대한 반발심의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법의학 보고서에 외압이나 회유, 편견 등 어떠한 불순물이 섞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DNA를 복제해 공룡을 만드는 대신, 궁극적이고도 순결한 진실을 추구했다. 퓰리처 상을 두 차례 수상한 ‘뉴스데이’ 칼럼니스트 겸 논픽션 작가 짐 드와이어(Jim Dwyer, 1957~)는 “블레이크를 아는 이들은, 그의 코 밑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를 갖다 대고 협박-회유해도 그로 하여금 연구 보고서의 구두점 하나도 바꾸게 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고 썼다.
1995년 형사재판 도중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유사한 장갑을 끼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O J 심슨. 그는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2년 뒤 민사재판에서는 패소했다. 희대의 사법 논란을 일으킨 그 재판에는 'Innocence Project'를 창립한 두 주역뿐 아니라 법의학자 블레이크도 변호인단으로 가담했다. AFP 연합뉴스
94년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사건 현장 혈흔과 심슨의 집과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전처) 혈흔, 전처의 남자친구였던 또 다른 피해자의 셔츠에서 발견된 심슨의 머리카락 등 DNA 증거들이 모두 심슨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했다. IP의 쉑과 뉴펠드도 변호인 ‘드림팀’의 일원이었다. 오랜 기간 뉴욕 법률구조협회(LAS) 소속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며 수사 당국의 증거 조작 등 병폐와 부실 수사를 익히 경험해온 그들은 재판에서 DNA 증거 오염-조작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LAPD와 과학수사대가 오염된 장갑 등을 사용해 증거물을 다뤄 심슨의 DNA가 묻었을 수 있다는 ‘크로스 오염(Cross-Contamination)’ 가능성, 또 DNA 분석 과정에서 표준 절차를 따르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실험실 오염 가능성. 경찰의 증거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들은 일부 수사관이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사실도 성공적으로 폭로했다.
배심원단은 심슨의 무죄를 평결했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들이 제기한 97년 민사소송(부당사망소송)에서는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배상 책임을 인정, 법원은 그에게 3,350만 달러(현재 가치 약 6,700만 달러)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검찰에게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형사재판과 달리 ‘증거 우위’ 즉 살인 책임 가능성이 50% 이상이면 충분한 민사재판이어서 가능했던 판결이었다. 심슨의 유죄 여부를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족으로선 원망스러웠겠지만, 쉑과 뉴펠드는 저 재판을 통해 PCR이라는 궁극적인 증거도, 사람(경찰 등)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는 것, 즉 증거물 채취-관리-분석 등 ‘증거 사슬(chain of custody)’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했다. 저 재판 이후 미국 경찰 및 과학수사대(CSI)는 증거물 수집-관리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모든 과정을 철저히 문서화하도록 표준운영절차(SOP)를 개선했다.
블레이크도 법의학 전문가로서 변호인단에 가담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재판 중 증인 명단에서 그를 돌연 배제했다. 블레이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환기하며 자신의 견해에 대한 어떠한 추론도 삼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변호사(Gerald L Chaleff)는 95년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변호인 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어떤 사안이 발생한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어쨌건 분명한 건, DNA 증인으로서 에드 블레이크는 케이크 위의 장식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블레이크는 케이크 그 자체다.”
로마 신화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저울과 칼(혹은 법전), 눈가리개 등으로 치우침 없는 사법 정의를 상징하지만, 법의학자 블레이크의 사무실 양팔저울은 늘 한쪽, 법의학자의 의견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사진은 서울 대법원 청사 로비의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블레이크의 사무실 양팔저울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스(ustitis)의 저울과 달리 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고 한다. 기운 쪽에는 '법의학자의 의견' 반대쪽에는 ‘변호사의 의견’이란 문구가 적힌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청부)총잡이를 찾는 변호사라면 나를 찾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심슨 재판 이후 더 신중해진, 어쩌면 심란해진 그는 “DNA 분석 결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라고,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의 업무 수행 방식이 사건 전체를 훼손할 경우, (또 그게 배리 쉑 같은 뛰어난 변호사의 손에 쥐여질 경우) 소위 합리적 의심이 추악한 고개를 들게 된다”고 말했다.
블레이크는 여러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썼고, 방송 등에 출연했고, 학회 등 여러 현장에서 강연했다. 그에겐 아내(Barbara Siegel)와 두 아들이 있었다.근년의 PCR은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진 유전자 표지자인 ‘STR(Short Tandem Repeats, 짧은 연쇄 반복)’을 이용하게 되면서 더 빠르고 더 정밀해졌다. 용의자의 모발과 안구 및 피부색 등을 예측하는 ‘법의 유전체학(Forensic Genomics)’, 상업용 공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용의자의 친척 등 혈통을 추적하는 ‘법의 유전체 계보학(Forensic Genealogy)’ 등도, 사생활-인권 침해 등 논란과 별개로, 각광받고 있다.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이란 저서에 "잘 알려진 놀라운 현상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인간에겐 매우 보편적으로 또 치유 불능일 정도로 그 놀라운 것들을 금세 당연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라고 쓴 바 있다. 심리학이나 경영학에서 말하는 ‘취득 효과’ 혹은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다. 블레이크는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숨졌고, 미국 언론은 두어 달 뒤에야 그의 부고를 전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바다이야기고래출현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은 1990년 10월 출간됐다. 하지만 복제 공룡 모티브가 처음 등장한 건 10여 년 전인 78년 IPC매거진이 발행한 SF만화 ‘저주받은 지구(The Cursed Earth)’에서다. 만화는 크라이튼처럼 구체적인 복제 방법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DNA 복제로 탄생한 육식 공룡들이 놀이공원에서 탈출해 주인공 손오공게임 의 모험에 스릴을 더했다.
1953년 DNA 구조가 규명된 뒤 57년 최초의 DNA 중합(복제)효소(polymerase)가 발견됐고, 60년대 말 70년대 초 DNA 합성 및 접합-재조합 이론과 기술이 잇달아 탄생했다. 70년대 일부 과학계와 상당수 대중은 마치 신의 설계도를 쥔 듯 고무돼, DNA의 비밀만 캐면 생로병사의 비밀과 개인의 릴게임가입머니 행동,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에 주목했다. ‘애실로마 회의(Asilomar Conference, 1975)’ 즉 DNA 조작-연구의 실질적-윤리적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DNA 복제에는 많은 기술적 난관이 있었다. 핵산 끄트머리에 결합해 DNA 중합효소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핵산 조각인 모바일바다이야기 ‘프라이머(primer)’를 먼저 합성해야 했고, 복제 단계마다 효소를 새로 넣어줘야 했다. 단백질 성분인 효소가 복제 첫 단계 즉 DNA 이중 나선구조를 분리(변성)하기 위해 가하는 열로 인해 파괴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저 난제 때문에라도 공룡을 복제하려면 공룡이 산 세월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78년 만화와 90년 소설 사이, 메이저릴게임사이트 분자생물학의 결정적인 진전 중 하나인 ‘중합효소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이 등장했다. DNA 전체가 아닌 연구에 필요한 일부를 자동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복제-증폭하는 기술.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고열 온천에 서식하는 호열성 세균에서 추출한 효소, 즉 ‘Taq 중합효소’가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합성되면서 효소의 열 취약성 문제도 해결됐다. PCR의 등장이 크라이튼에게 영감을 주었겠지만, DNA 특정 영역의 복제 기술로는 ‘인젠’의 과학자들처럼 수백만 쌍의 프라이머가 동시에 효율적으로 작용해 엄청난 길이의 DNA를 통째로 복제하진 못한다.
어쨌건 현대 생물학은 PCR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오늘날 PCR은 거의 모든 생물학 관련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활용된다. 에이즈(HIV)와 인플루엔자, 코비드 등 감염병 진단서부터, 수많은 유전질환 조기진단 검사, 유전자 복제와 발현 연구, 고생물학과 진화 연구, 그리고 법의학-과학수사.
PCR기법은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에 의해 1985년 탄생했다. 분자생물학의 판도를 바꾼 그 기술 특허를 회사는 91년 3억 달러에 매각했지만, 그가 받은 보상은 보너스 1만 달러였다. 그는 93년 노벨상 시상식 전날 선물 받은 휴대용 레이저 포인터로 스톡홀름 호텔 창가에서 시민들을 비추다 저격수로 오인받아 경찰 조사를 받는 해프닝을 빚은 일화가 있다. 2009년 TED 강연 당시의 그. 위키피디아.
그 기술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생명공학회사(Cetus Corp.) 연구원 캐리 멀리스(Kary B. Mullis, 1944~2019)에 의해 1985년 탄생했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진단 기법을 연구하던 그는 DNA 전체를 번거롭게 대조하는 대신 해당 유전자가 포함된 DNA 일부만 선택적으로 복제하면 훨씬 효율적이라 판단, 특정 구간 DNA 복제에 필요한 프라이머만 사용해 중합효소로 복제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의 아이디어는 회사 연구진이 별도로 분리 추출해낸 내열성 ‘Taq 중합효소’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실용화됐고, 멀리스는 그 공로로 199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멀리스의 회사 빌딩에 우연히도 에드워드 블레이크(Edward T. Blake, 1945.7.31~ 2025.8.6)라는 한 법의학자의 연구소(FSA)가 함께 입주해 있었다. UC버클리에서 법의학을 전공한 블레이크는 분자생물학적 법의학 기법들-혈액형이나 단백질 분석-에 정통한 학자였다. 건물 복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Cetus 연구진과 담소하던 중 최신 성과를 듣게 된 그는 여느 과학자보다 발 빠르게 그 기법을 전수받았다.
1984년 11월 펜실베이니아에서 만 92세 남성 조셉 클라이(Joseph Kly)가 심한 탈수와 기아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그에게 돈을 받고 그를 돌보던 이웃 부부를 3급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계약상의 의무, 즉 간병 및 음식 제공 서비스를 이행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며 노인의 계좌에서 3만 달러 이상의 돈도 빼돌린 혐의였다. 사건은 민법상의 계약 위반을 형법상의 살인죄로 기소한 드문 예여서 사회적 주목을 끌었다. 재판 과정에서 사인의 핵심 증거였던 노인의 장기 일부가 다른 시신의 것과 바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이 매장된 지 1년이 지난 클라이의 시신 DNA와 부검 샘플 DNA 대조작업을 블레이크에게 의뢰했다. 당시 미국, 아니 전 세계에서 PCR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법의학자였던 그는 86년 재판에서 해당 샘플이 클라이의 것임을 입증했다. PCR 검사가 활용된 최초의 형사 사건이었고, PCR의 위력 즉 심하게 부패-훼손된 DNA로도 주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일깨운 사건이었다. FBI를 비롯한 미국 각주 경찰 당국이 DNA 수사 및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현대 과학수사의 ‘게임 체인저’라 불리는 PCR을 선구적으로 도입해 O J 심슨 재판 등 수많은 재판에 결정적으로 간여하고, 사형수를 포함한 수많은 수감자에게 자유와 명예를 되찾아준 에드워드 블레이크가 별세했다. 향년 80세.
2023년 12월, 한 사건에 대한 뉴욕 법원의 유죄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며 시위를 벌이는 'Innocence Project' 회원들. 지금까지 수감자 근 400명의 무죄를 입증해 그들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시킨 'Innocence Project'의 창립 1등공신도 블레이크와 그의 법의학이었다. Innocence Project 사진.
DNA 검사를 법의학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은, 간발의 차이로 블레이크보다 앞선 영국 유전학자 알렉 제프리스다. 그는 1983년과 86년 영국 레스터셔 일대에서 일어난 10대 소녀 연쇄 강간 살인 사건 수사에 참여, 84년 자신이 개발한 ‘ DNA 지문’ 검사로 시신의 몸에서 검출된 정액 DNA와 유력 용의자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인근 마을 17~34세 남성 약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 대규모 자발적 DNA 대조작업 끝에 87년 9월 진범을 찾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제한효소 절편길이 다형성(RFLP)’ 기법이라 불리는 그의 방식은 다량의 온전한 DNA가 필요한 데다 절차도 무척 까다로워 한 건을 분석하는 데만도 약 한 달이 걸렸다. 반면에 블레이크의 PCR 기법은 어지간히 부패-훼손된 DNA로도, 체액 흔적이나 체모 한 조각 등 극미량으로도 불과 1~3시간이면 검사가 가능했다.
1977년 시카고 교외에서 일어난 10대 여성 납치 강간 사건의 범인으로 79년 20세 청년 게리 닷슨(Gary Dotson)이 검거돼 25~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증언과 정액 혈액형이 유죄 근거였다. 사건 약 8년 뒤 피해자가 당시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번복 진술의 신뢰성을 무시하며 닷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변호인단은 블레이크의 PCR 검사로 무죄를 입증했고, 닷슨은 만 10년 옥살이 끝에 89년 8월 재심으로 석방됐다. PCR 검사로 석방된 최초의 기결수였다.
84년 메릴랜드주 9세 소녀 강간 살해 혐의로 한 해병 예비역(Kirk Noble Bloodworth) 청년이 체포됐다. 목격담 몽타주와 닮았다는 게 주된 유죄 근거였다. 1급 살인혐의로 85년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86년 항소심에서 검찰의 증거 은닉 사실이 드러나 무죄로 풀려났다가 재심에서 다시 사형을 선고받은 기구한 죄수였다. 수감 중 DNA 검사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변호인단을 통해 블레이크에게 도움을 청했고, 9년여 만인 93년 사형수로선 최초로 누명을 벗었다. 진범은 ‘콜드히트(cold hit)’ 즉 DNA 데이터베이스(CODIS) 대조작업을 통해 2003년 밝혀졌다. 그렇게 블레이크는 사형수를 포함 50여 명의 누명을 직접 벗겼다.
인권변호사 배리 쉑(Barry Scheck)과 피터 뉴펠드(Peter Neufeld)가 누명을 쓴 재소자 구제 단체 ‘이너선스 프로젝트(IP, Innocence Project)’를 92년 창립한 배경에도 블레이크가 있었다. IP는 블레이크 등과 협력하며 지금까지 사형수 21명을 포함, 수감자 379명(2024년 6월 기준)의 무죄를 입증했다. 뉴펠드는 2000년 ‘뉴요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야구 역사상 3할대 타자는 여럿 있지만, 최강 타자는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다. (법의학 분야의) 테드 윌리엄스가 에드 블레이크다.”
에드워드 블레이크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평범한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이혼 후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UC버클리 물리학과에 입학했다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법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68년 졸업했고, 76년 범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 카운티 보안관실 범죄학 연구소 일을 거들며 실무도 익혔다. 졸업 후 한동안 법의학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78년 자기 회사(FSA)를 설립, FBI와 지역 경찰-보안관실과 협업하며 경험과 명성을 쌓아갔다.
법의학자에게 형사 사건의 유-무죄는 과학적 증거 유무로 갈리는 흑백의 세계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로스쿨 명예교수인 올리버 C. 슈뢰더(Oliver C. Schroeder)에 따르면, 당시 경찰 범죄연구소 책임자들은 경찰이 원하는 특정 결과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예사로 받았다. “그런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들은 과학이 아니라 자신의 직장에 충성하기 때문”에 아무리 PCR이 확실한 기법이라고 해도 의심이 따를 수 있었고, 실제로 우려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블레이크의 완고함은 그에 대한 반발심의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법의학 보고서에 외압이나 회유, 편견 등 어떠한 불순물이 섞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는 DNA를 복제해 공룡을 만드는 대신, 궁극적이고도 순결한 진실을 추구했다. 퓰리처 상을 두 차례 수상한 ‘뉴스데이’ 칼럼니스트 겸 논픽션 작가 짐 드와이어(Jim Dwyer, 1957~)는 “블레이크를 아는 이들은, 그의 코 밑에 불붙은 다이너마이트를 갖다 대고 협박-회유해도 그로 하여금 연구 보고서의 구두점 하나도 바꾸게 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고 썼다.
1995년 형사재판 도중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유사한 장갑을 끼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O J 심슨. 그는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2년 뒤 민사재판에서는 패소했다. 희대의 사법 논란을 일으킨 그 재판에는 'Innocence Project'를 창립한 두 주역뿐 아니라 법의학자 블레이크도 변호인단으로 가담했다. AFP 연합뉴스
94년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사건 현장 혈흔과 심슨의 집과 차에서 발견된 피해자(전처) 혈흔, 전처의 남자친구였던 또 다른 피해자의 셔츠에서 발견된 심슨의 머리카락 등 DNA 증거들이 모두 심슨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했다. IP의 쉑과 뉴펠드도 변호인 ‘드림팀’의 일원이었다. 오랜 기간 뉴욕 법률구조협회(LAS) 소속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며 수사 당국의 증거 조작 등 병폐와 부실 수사를 익히 경험해온 그들은 재판에서 DNA 증거 오염-조작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LAPD와 과학수사대가 오염된 장갑 등을 사용해 증거물을 다뤄 심슨의 DNA가 묻었을 수 있다는 ‘크로스 오염(Cross-Contamination)’ 가능성, 또 DNA 분석 과정에서 표준 절차를 따르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실험실 오염 가능성. 경찰의 증거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그들은 일부 수사관이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사실도 성공적으로 폭로했다.
배심원단은 심슨의 무죄를 평결했다. 하지만 피해자 유족들이 제기한 97년 민사소송(부당사망소송)에서는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배상 책임을 인정, 법원은 그에게 3,350만 달러(현재 가치 약 6,700만 달러) 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 검찰에게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입증’ 책임을 요구하는 형사재판과 달리 ‘증거 우위’ 즉 살인 책임 가능성이 50% 이상이면 충분한 민사재판이어서 가능했던 판결이었다. 심슨의 유죄 여부를 둘러싼 의혹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족으로선 원망스러웠겠지만, 쉑과 뉴펠드는 저 재판을 통해 PCR이라는 궁극적인 증거도, 사람(경찰 등)에 의해 오염될 수 있다는 것, 즉 증거물 채취-관리-분석 등 ‘증거 사슬(chain of custody)’의 정확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했다. 저 재판 이후 미국 경찰 및 과학수사대(CSI)는 증거물 수집-관리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모든 과정을 철저히 문서화하도록 표준운영절차(SOP)를 개선했다.
블레이크도 법의학 전문가로서 변호인단에 가담했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재판 중 증인 명단에서 그를 돌연 배제했다. 블레이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환기하며 자신의 견해에 대한 어떠한 추론도 삼가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변호사(Gerald L Chaleff)는 95년 LA타임스 인터뷰에서 “변호인 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어떤 사안이 발생한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어쨌건 분명한 건, DNA 증인으로서 에드 블레이크는 케이크 위의 장식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블레이크는 케이크 그 자체다.”
로마 신화의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저울과 칼(혹은 법전), 눈가리개 등으로 치우침 없는 사법 정의를 상징하지만, 법의학자 블레이크의 사무실 양팔저울은 늘 한쪽, 법의학자의 의견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사진은 서울 대법원 청사 로비의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블레이크의 사무실 양팔저울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스(ustitis)의 저울과 달리 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고 한다. 기운 쪽에는 '법의학자의 의견' 반대쪽에는 ‘변호사의 의견’이란 문구가 적힌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청부)총잡이를 찾는 변호사라면 나를 찾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심슨 재판 이후 더 신중해진, 어쩌면 심란해진 그는 “DNA 분석 결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라고,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부의 업무 수행 방식이 사건 전체를 훼손할 경우, (또 그게 배리 쉑 같은 뛰어난 변호사의 손에 쥐여질 경우) 소위 합리적 의심이 추악한 고개를 들게 된다”고 말했다.
블레이크는 여러 학술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썼고, 방송 등에 출연했고, 학회 등 여러 현장에서 강연했다. 그에겐 아내(Barbara Siegel)와 두 아들이 있었다.근년의 PCR은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진 유전자 표지자인 ‘STR(Short Tandem Repeats, 짧은 연쇄 반복)’을 이용하게 되면서 더 빠르고 더 정밀해졌다. 용의자의 모발과 안구 및 피부색 등을 예측하는 ‘법의 유전체학(Forensic Genomics)’, 상업용 공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해 용의자의 친척 등 혈통을 추적하는 ‘법의 유전체 계보학(Forensic Genealogy)’ 등도, 사생활-인권 침해 등 논란과 별개로, 각광받고 있다.올더스 헉슬리는 ‘영원의 철학'이란 저서에 "잘 알려진 놀라운 현상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인간에겐 매우 보편적으로 또 치유 불능일 정도로 그 놀라운 것들을 금세 당연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라고 쓴 바 있다. 심리학이나 경영학에서 말하는 ‘취득 효과’ 혹은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다. 블레이크는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숨졌고, 미국 언론은 두어 달 뒤에야 그의 부고를 전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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