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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별 보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 'HAM(아마추어 무선통신사)반' 여름 수련회 때 은하수를 본 이후부터다. 강원도 설악동 민박집 앞 너럭바위에 누웠다가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우연히 목격하고선 그 풍경에 반한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본 은하수가 선명하다며 "별 보러 가자"는 얘길 종종 한다.
강원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를 시작으로 경기 연천의 '당포성'과 '호로고루성'에도 다녀왔지만 또다시 별 보기를 꺼내든 그. 강릉 '안반데기'와 춘천 '건봉령 승호대'로 지난 24일 떠났다. 더운 여름에는 여행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뒤로하고 이틀을 강릉과 춘천에서 머물렀다.
숨은 별 맛집, 건 바꿔드림론 3개월 봉령 승호대

안반데기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곳이라 관광지다웠다. 사람도 많고, 그 꼭대기에 화장실까지 마련돼 있었다. 차박 자동차들이 주차장을 모두 차지한 걸 보며 인기 있는 장소란 걸 실감했다. 여러 기의 풍력 발전기에서 깜박이는 항공 안전 점멸등 빛이 밝다며 남편은 안반데기가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별 대구현대스위스저축은행 가득한 하늘은 도시와 다른 여름 밤을 연출했고 남편은 연신 휴대폰 카메라를 눌렀다. 무엇보다 서늘한 밤 공기가 더위로 시들한 심지에 생기를 돋워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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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봉령 승호대에서 바라본 소양호


ⓒ 오순미




이번 별 보기에선 춘천 '건봉령 승호대'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kb 공인인증서 남았다. 청평사 주차장 뒤편 부귀로 굽잇길 따라 8~10km 정도 올라가야 나오는 곳이다.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들 만큼 가로등도 자동차도 인적도 없는 길이다. 청평사 아래서 식사하며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오르다 말고 돌아서 나올 만큼 한적하다 못해 적막이 가득했다. 햇빛도 드문드문 들이쳐 긴장하며 운전해야만 갈 수 있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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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인가 싶은 곳 구석 자리에 두 대 정도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었지만 이미 만차였다.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니 갓길에 다른 차량 한 대가 주차되어 있어 우리도 그 앞에 차를 대고 내렸다. 차량통행이 드문 곳이라 갓길 주차가 인정되는 듯했다. 우리 뿐인 줄 알았는데 먼저 온 이들이 보여 안심이었다.
'길이 녹록지 않던데 어떻게 오셨냐'고 먼저 온 분에게 물으니 춘천에서 살아서 자주 오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모녀 사이인 두 분은 오히려 내게 이 길을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검색으로 찾아왔다고 하자 사진 작가냐고 물었다. 햇내기 별지기라고 하자 별 뿐 아니라 풍경 맛집이라며 승호대를 소개했다. 사계절 내내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라며 계절마다 와 볼 것을 추천했다. 봄 산동백,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이 제각각 아름답다고 했다.
그제야 전문가용 카메라가 설치된 게 보였다. 이 분이 이 길에 자주 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진 공부에 여념 없는 장년쯤으로 보이는 춘천 시민. 그녀의 일상이 소양호처럼 넓고 푸르러 보였다. 산과 하늘, 나무와 호수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를 환대하는 선물 같았다.
와, 이 외진 곳에 이런 풍광이라니
굽이굽이 휘어 도는 길을 지나 고갯마루에 다다랐을 때 예상 밖의 풍경이 우릴 반겼다. '건봉령 승호대'라는 소박한 안내판 아래 푸르디 푸른 소양호가 영화 속 삽화처럼 섬세하게 드러났다. 외지고 외진 곳에 숨은 풍광이 이리 광활하고 정교해도 될 일인가. 탁 트인 개방감은 가히 일품이었다.
오래된 입간판이 아니었다면 지나칠 수밖에 없었을 소양호 절경. 작은 섬들과 산 자락을 품은 모습이 남해 다도해를 떠올릴 만큼 비경이었다. 비경 속에서 소리 없이 승호대를 올려다보는 소양호는 별 보러 왔다가 건진 횡재였다. 발 아래 펼쳐진 호수와 그 넘어 먼 가리산까지 두 눈에 가득 들어차니 긴장된 마음이 툭 사라졌다. 승호대는 소양호 풍경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한 곳이었다.
승호대(勝湖臺)는 '수려한 소양호 경치를 바라보기 좋은 전망대'란 뜻으로 발견 및 작명, 글씨 모두 '소나무 화가 우안 최영식 화백'의 손길이라고 한다. 바이커(오토바이 애호가)들에겐 순례지, 사진작가들에겐 단골 촬영지, 별지기들에겐 별밤의 성지로 떠오르며 춘천시 북산면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승호대라고 쓰인 뒤편엔 '산첩첩 물겹겹 아름다운 산하여'라는 시 구절이 쓰여 있다. 장엄한 소양호 풍경이 간결한 4어절 안에 다 들었다는 게 경이롭다.










▲  건봉령 승호대 표지판


ⓒ 오순미




승호대 표지판은 작고 수수하지만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사람이든 지역이든 이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승호대란 이름과 벼랑 위 작은 공간의 인연이 소양호 속살을 볼 수 있게 한 것처럼 이름이 있는 것은 언제나 시작을 꾀한다. 미미한 시작은 별을 동경하는 머리 희끗한 사나이 발길에도 닿았고 따라나선 여인네 눈길에도 별똥별을 남겼으니까.

'건봉령 승호대'에 흐르는 여름밤 그 별빛
승호대가 있는 '건봉령(乾烽嶺)'은 봉화를 피워 올리던 고개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불빛 대신 별빛을 피워 올리는 자리가 되었다. 광공해가 없는 고갯마루엔 오직 별빛만 흐르고 별빛만 소곤거렸다. 고개를 젖히면 고요 속에 반짝이는 별들의 향연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때론 떨어지고 부서지면서도 여전히 가득하고 반짝거렸다. 순식간에 지나간 여름 밤 별똥별은 환상적인 메시지 같았다.
우리 뒤로도 더 찾아온 연인과 가족, 친구와 부부는 흐드러지게 피워 올리는 별빛을 갈무리하려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 조절에 정신을 쏟았지만 분주해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하늘 한번 쳐다보다 다시 카메라를 만지는 그들의 모습이 무수한 별들 중 또 하나의 별 같았다.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별도의 시설도 마땅한 전망대도 없는 그곳. 오르는 길조차 구불구불 불친절하지만 불평 한 마디 들리지 않는 그곳은 누구든 마음에 낀 먼지를 털어낼 만한 곳이다. 누군가는 흩어진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했던 곳으로 기억할 것이다.
은하수는 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별빛과 소양호에 안겨 깊고 넓은 마음을 닮아가는 시간이 하염 없이 주어졌던 고갯마루. 나는 거기서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한없이 가벼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름조차 몰랐던 춘천 건봉령 승호대를 되돌아 나오는 길에 손 흔들며 조용히 말을 걸었다.

"너 잘 있어라, 나 다시 올 때까지."










▲  남편이 찍은 별 사진.


ⓒ 신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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