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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미술사는 추상미술을 개척한 화가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에트 몬드리안의 이름을 적었다. 칸딘스키가 자신의 ‘완전 추상화’를 그린 시점은 프란츠 마르크 등과 청기사파를 결성해 전시를 열 무렵인 1911년. 몬드리안이 캔버스에 질서정연한 수직, 수평선만 남기고 다른 요소는 몽땅 지우기 시작한 건 무질서로 가득 찼던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 즈음이다.
2018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견고했던 미술사에 균열이 생겼다. 대형 캔버스에 기하학적 형상과 알 수 세우기 없는 상징이 그려진 한 여성 화가의 회화들이 걸리면서다. “전에 본 적 없는 회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6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이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유수의 미술관을 돌며 반향을 일으켰다. 화가의 이름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 대다수가 들어본 적 없던 이름이지만, 21세기 은행원 하는일 미술계가 열광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가 첫 추상화로 평가되는 ‘태초의 혼돈’을 그린 때는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선 1906년이기 때문이다.



힐마 아프 클린트.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수년간 미국과 유럽 등을 돌며 정기예금금리높은곳 미술계를 달군 ‘최초의 추상화가’ 아프 클린트의 그림이 부산 을숙도에 상륙했다. 하단동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지난 19일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 열렸다. 앞서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전시를 잇는 아시아 순회전이다. 그의 작품 대다수를 관리하는 힐마아프클린트재단과 협력해 진행하는 터라 회화부터 드로잉 기록 등 작품 세계 전반을 눈 하나은행 신용대출 에 담을 수 있는 작품 139점이 걸렸다.
1862년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에서 태어난 아프 클린트는 스웨덴 왕립미술학교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정식 화가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오랜 세월 잊혀 있었다. 그간 서양미술의 미학과 담론은 대체로 서유럽·백인·남성의 시각의 단선적 구조로 전개됐기 때문. 아프 클린트는 귀족 가문에서 나고 자란 백인이 일반사업 었지만, ‘변방’의 ‘여성’이란 점에서 미술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은 장엄한 예술 대신 삽화나 작은 풍경이나 그려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아프 클린트 스스로가 자신의 서사를 감춘 탓도 있다. 그는 1908년 독일의 저명한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자신의 추상 연작을 보여줬다. 모든 종교와 사상, 철학, 인종이 구분 없이 평등하다고 본 신지학 운동을 이끈 인물인 만큼,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것이란 기대감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당시로선 추상화를 인정할 수 없었는지 슈타이너는 혹평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이후 아프 클린트는 194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을 숨겼고, 사후 20년간 자신의 예술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힐마 아프 클린트, No. 7, 성인기, 그룹 IV, 10점의 대형 그림, 1907, 종이에 템페라, 캔버스에 부착, 315 × 235 cm. /힐마 아프 클린트 재단 제공.


조명받지 못했던 지난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전시는 그의 생애와 작업 방식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구성됐다. 추상의 틀 안에서도 시기마다 캔버스에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사유의 변화를 따라간다. 전시 하이라이트는 단연 널찍한 공간에 나란히 걸린 세로 3ｍ가 넘는 ‘10점의 대형 회화’ 연작이다. 유년기의 순수함부터 활력이 넘치는 청년기, 성인기의 성숙미, 영적인 완성을 이루는 노년기 등 삶을 네 단계로 나눠 표현한 대담한 추상화다.
추상화뿐 아니라 초기 습작부터 동·식물 그림, 풍경화, 말년의 수채화 등도 함께 걸렸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최근 수년 새 미술계가 ‘최초’, ‘여성’, ‘추상 선구자’, ‘재조명’이라는 틀 속에서 다소 강박적으로 아프 클린트의 예술을 소비해온 움직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아프 클린트의 노력과 시도가 묻히는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류 미술사에 대한 반박으로 만들어진 ‘추상화 선구자’라는 신화적 파도에 휩쓸리기만 해선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관점에서 아프 클린트의 추상화 자체를 비판적 태도로 조망해보는 것도 좋다. 신지학과 영매술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진 아프 클린트는 일종의 매개자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종교적 계시를 시각화했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관점과 이론을 담은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란 책을 낸 칸딘스키나, 자신의 그림을 ‘신조형주의’로 규정한 몬드리안과 달리 아프 클린트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힐마 아프 클린트를 다룬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 미래를 위한 그림'에서 관람객들이 미술관에 전시된 아프 클린트의 작품을 바라보는 모습.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꼼꼼한 이론체계를 가졌던 칸딘스키와 달리 아프 클린트는 번뜩이는 계시를 받아 전달하는 입장이란 점에서 ‘예술가라 할 수 있나’란 물음표도 가능하다”면서 “그의 예술은 시대를 앞선 추상성에 더해 영성과 과학 사이의 긴장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 유산”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유승목 기자
※힐마 아프 클린트의 삶과 예술, 전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스토리는 이달 말 발간되는 아르떼매거진 15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