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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실주의 연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이 만든 여성 캐릭터 중 헤다 가블러는 연극사에서 매력적인 역할로 손꼽힌다. 1891년 초연된 연극의 제목이자 주인공인 헤다 가블러는 귀족인 가블러 장군의 외동딸이자 주변의 찬사를 받는 미인이다. 연극은 그녀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틀을 다룬다.
고지식한 학자 테스만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그녀는 권태를 느낀다. 이때 그녀의 옛 애인이자 남편의 친구인 에일레트가 찾아온다. 에일레트는 과거의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 남편과 교수 임용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가 됐다. 그날 술에 취한 에일레트가 부동산 매매계약 출판될 원고를 잃어버리고 좌절하자 그녀는 그에게 권총을 쥐여주며 자살을 유도한다. 헤다를 탐해온 브라크 판사가 그 사실을 꿰뚫어 보고 압박했을 때 그녀는 자유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배우 이영애가 출연 중인 연극 ‘헤다 가블러’의 공연 장면. (c)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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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헤다 가블러’는 초연 당시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헤다는 오래지 않아 ‘여자 햄릿’으로 불리며 여배우들이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됐다. 올해 한국에서는 배우 이영애와 이혜영이 비슷한 시기에 도전해 화제를 모았다.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이영애다. 지난 메가볼시티 7일부터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에서 공연 중인 ‘헤다 가블러’(~6월 8일까지)에서 이영애의 헤다는 사랑스럽고 도도한 모습 속에 내면의 고독과 우울함이 묻어났다. 강렬한 카리스마 대신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헤다가 이번 공연의 포인트다. 최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영애는 “헤다 연기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배우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라면서 영세기업 “개인적으로 출산과 육아 등을 겪으며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생긴 지금이 헤다를 연기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헤다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캐릭터라 배우로서 연기하는 재미가 크다”고 부연했다.



배우 이영애가 출연 중인 연극 ‘헤다 가블러’의 공 m포인트 주유 연 장면. (c)LG아트센터


전인철이 연출한 이번 연극은 입센의 원작이 아닌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을 바탕으로 했다. 대사가 짧아지고 표현이 직접적이 되면서 원작의 무거움이 줄었다. 19세기 유럽에서 결혼과 출산 등 당시 사회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는 헤다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에는 지금 시대와 맞지 않아서다. 이영애는 “헤다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욕망, 불안, 파괴본능 등 헤다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다”고 설명했다.
‘헤다 가블러’는 이영애의 32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공연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신인이던 199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짜장면’에 출연한 적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활동해온 그가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 데는 국내 최고 입센 권위자인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의 영향이 컸다.



배우 이영애가 출연 중인 연극 ‘헤다 가블러’의 공연 장면. 라이브캠을 활용해 무대 위 헤다를 클로즈업해 뒤편 스크린에 비춘다. (c)LG아트센터


그는 “은사이신 김미혜 교수님이 10년 넘게 입센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걸 봐왔다. 교수님이랑 연극도 보러 다니고 작품 이야기도 나누면서 헤다를 연기하고 싶어졌다”면서 “그런데, 배우에게 타이틀롤(작품 제목과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은 행복한 짐이자 고통의 선물인 거 같다. 처음엔 부담감 때문에 공연 중 대사가 안 나오고 관객들이 나가버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하지만 연출가, 동료 배우들과 연습을 거듭하며 연기가 재밌어졌다”고 돌아봤다.
이번 작품은 공연 도중 라이브캠을 활용해 무대 위 헤다를 클로즈업해 뒤편 스크린에 비춘다. 헤다를 연기하는 이영애의 아름답고 섬세한 표정이 눈앞에 다가온다. 라이브캠의 활용은 연출가의 아이디어지만 앵글 앞 연기에 익숙한 이영애가 카메라 구도를 제안했다. 헤다의 의상에도 이영애의 의견이 반영됐다. 이영애는 벌써 다음 무대에 대한 의욕도 드러냈다. “연극은 힘들어도 많은 걸 배우는 기회에요. 다음엔 소극장에서 관객과 심리 게임을 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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