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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비극과 그를 향한 충절을 기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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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21회 작성일 25-04-2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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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비극과 그를 향한 충절을 기억하는 고장, 강원 영월이 글은 영월군이 영월에서 일주일 살기를 일부 지원하는 '영월읍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4월6일부터 12일까지 7일간 머물며 여행한 기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23년부터 시작한 지자체 지원 여행의 13번째 여행입니다. <기자말> ▲ 단종문화재 현수막ⓒ 박상준봄바람이 불던 4월 초, 거리의 가로등 기둥마다 4월 25일부터의 단종문화제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강원 영월은 '단종의 고장'이다.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영월에서 단종의 넋이라도 위로하고 기리는 행사를 해마다 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단종의 슬픔은 뒤로 한 채 즐거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그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그 마음은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계유정란과 단종의 폐위조선 제6대 왕 단종은 1441년에 태어나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의 외아들로 왕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세종을 이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단종은 겨우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정치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어린 임금을 대신해 조정을 이끌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권신들을 불안하게 여겼던 숙부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을 비롯한 단종의 보위를 지키던 신하들을 참살하면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지금의 국회와 헌법재판소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과연 내란에 해당하는 계유정란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는 생각이리라.얼마동안 단종은 형식적으로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수양대군은 1455년에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다. 단종은 왕위를 내주고 '상왕'이라는 이름뿐인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가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형당했다. 이때 세종의 여섯째 왕자이자 세조의 아우인 금성대군도 연루되었으나 죽이지는 않고 순흥으로 유배를 보냈다.청령포와 관풍헌의 자규루 ▲ 청령단종의 비극과 그를 향한 충절을 기억하는 고장, 강원 영월이 글은 영월군이 영월에서 일주일 살기를 일부 지원하는 '영월읍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4월6일부터 12일까지 7일간 머물며 여행한 기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23년부터 시작한 지자체 지원 여행의 13번째 여행입니다. <기자말> ▲ 단종문화재 현수막ⓒ 박상준봄바람이 불던 4월 초, 거리의 가로등 기둥마다 4월 25일부터의 단종문화제를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강원 영월은 '단종의 고장'이다.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영월에서 단종의 넋이라도 위로하고 기리는 행사를 해마다 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단종의 슬픔은 뒤로 한 채 즐거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그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그 마음은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계유정란과 단종의 폐위조선 제6대 왕 단종은 1441년에 태어나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의 외아들로 왕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세종을 이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단종은 겨우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정치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다.어린 임금을 대신해 조정을 이끌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의 권신들을 불안하게 여겼던 숙부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란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을 비롯한 단종의 보위를 지키던 신하들을 참살하면서 조정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지금의 국회와 헌법재판소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과연 내란에 해당하는 계유정란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는 생각이리라.얼마동안 단종은 형식적으로 왕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수양대군은 1455년에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다. 단종은 왕위를 내주고 '상왕'이라는 이름뿐인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시도가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처형당했다. 이때 세종의 여섯째 왕자이자 세조의 아우인 금성대군도 연루되었으나 죽이지는 않고 순흥으로 유배를 보냈다.청령포와 관풍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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