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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지난달 28일 발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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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onion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5-04-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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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지난달 28일 발생한 미얀마 강진 사망자가 3천6백 명, 부상자는 5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현장 수색 작업은 마무리 됐지만 피해 규모가 워낙 커서 복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건물 추가 붕괴 우려 등으로 거리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웅성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금 가거나 무너지고, 기우뚱 기운 건물들까지. 미얀마 만달레이 시내에선 몇 걸음 가지 않아도 지진의 상흔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건물들 피해는 더 심각합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차도를 가로막아 차량이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현지 봉사단체도 나서 자발적으로 실종자들을 찾고 있지만, 장비가 부족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슬람 봉사단체 단원 : 장비가 없어서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반년이 걸릴지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진 속에 살아남은 주민들은 길거리에 얇은 담요를 깔고 지냅니다. 차가 바로 옆을 스쳐 가는 도로에서 끼니를 때우는 데는 어린아이도 예외가 없습니다. 집이 사라졌거나, 남아 있어도 무너질까 두려워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손된 전신주 주변에선 대형 고무줄놀이라도 하듯, 바닥에 뒤엉킨 전선 위를 위험천만하게 넘어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또,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겨, 주민들은 태양광 충전기에 연결한 작은 선풍기에 의존해 무더위를 견디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피해 복구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한창 복구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대낮입니다. 그런데 몇 발자국을 이동해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게 온통 암흑천지로 변합니다. 결국, 복구 작업은 대형 시설이나 유적지 중심으로 이뤄지고, 골목골목까진 손길이 닿지 못합니다. [만달레이 주민 : 전기가 안 되고 물이 없으니까 매일매일 힘듭니다.] 집 앞 노숙도 어려운 이들은 도시 곳곳에 형성된 수백 미터 길이 천막 난민촌에 자리 잡았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구호물자를 받으러 긴 줄을 서야 하는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YTN 윤웅성입니다. 촬영기자;신홍 정진현 YTN 윤웅성 (yws3@ytn.co‘○○○ 파경….’ 이혼이나 이별을 알리는 기사 제목에 즐겨 등장하는 용어가 ‘파경(破鏡)’이다.거울이 깨졌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파경’에는 ‘중원(重圓·다시 원을 이룸)’이 붙어 ‘파경중원(破鏡重圓)’, 즉 ‘이별(파경) 후 재회(중원)’가 본뜻이기 때문이다. 2017년 경북 경산 하양읍 양지리의 널무덤 주인공 가슴 위에서 출토된 명문 청동거울. 명문이 ‘군망망(君忘忘~)’으로 시작되어 ‘군망망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들어 지병으로 떠나보낸 남편을 사랑한 나머지 ‘아직 그대를 놓아줄 수 없다’고 애끊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남편의 가슴에 고이 올려놓은 청동거울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국립대구박물관·국립청주박물관·국립나주박물관 제공 ■파경=이별과 재회<태평어람>(938년 편찬)은 <신이경>(기원전 132년 편찬)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옛날 어떤 부부가 부득이 떨어져 있게 되자 거울을 깨뜨려(破鏡) 각기 반씩 나누어 징표로 삼았다. 그러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통하자 그 깨진 거울이 까치가 되어 남편에게 날아가 일러바쳤다.”(‘파경’)‘깨진 거울(鏡·경)이 까치(鵲·작)가 되어(化·화) 날아갔다(飛·비)’는 ‘경화작비(鏡化鵲飛)’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가리킨다.<태평광기>(978년 편찬)에는 이별 후 재회, 즉 ‘파경중원’의 기사가 보인다. 즉 남조 진(陳·557~589)의 관리였던 서덕언은 수나라군이 쳐들어오자 청동거울을 반으로 잘라 부인과 나눠 가지며 재회의 증표로 삼았다. 양지리 출토 명문거울 중 한 점은 주인공의 가슴 위를 덮은 부채 자루 밑에 곱게 놓여있었다. 지름 17.4㎝나 되는 이 거울은 한반도 남부 출토품 가운데 가장 큰 한경, 즉 중국 한나라제 거울이다.|국립청주박물관 제공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이걸(거울 반쪽)을 장안(長安·도읍) 시장에 내다 파시오. 내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가겠소.”결국 진나라는 멸망했고, 서덕언의 부인은 수나라 개국공신인 양소(?~606)의 노예로 끌려갔다. 부인은 양소의 첩이 되어 총애를 받게 됐다. 양지리 출토 명문 청동거울을 두고 처음 판독은 ‘한탄도 하지 못하고…슬픔에 지쳐 마음의 고통을 호소할 수 없어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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