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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라테를 앞에 두고 책 읽는 윤동주 시인, 격식을 갖춘 양복 차림으로 목례하는 외교관이 된 안창호도 있다. 지난달 중순 공개돼 조회 수 431만회를 기록한 이 영상 아래엔 “부디 그리들 살고 계시길” “이렇게라도 자꾸 얼굴과 이름을 익히는 것, 너무 좋은 것 같다”와 같은 댓글이 3100개 넘게 달렸다.
영상을 만든 유튜버 겸 도장 기술자 박일(35) 서울대학교 대학원 씨는 “나 역시 독립운동가분들의 생전 모습을 AI로 복원한 영상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만들게 됐다”며 “잊힌 독립운동가분들을 한 분이라도 더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
광복 80주년. MZ들이 광복절을 기념하는 방법은 다르다. AI로 구현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뜻을 기리고 당시의 아픔을 되새긴다. 8월 자호체 15일이란 숫자에 맞춰 8.15㎞를 뛰며 ‘기부런’을 한다. ‘데니 태극기(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디자인을 활용한 소품과 미디어아트에 열광한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줄지 않았다.



지난 2일 가수 션(가운데)이 815런을 준비하며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권은주(맨 왼 개인신용대출금리 쪽) 감독, 배우 고한민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을 달리고 있다. 올해 815런에는 1만9450명이 참여했다. 광복절을 기념해 출시한 성심당 ‘광복절빵(오른쪽 위)’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파는 ‘데니 태극기’ 키링도 큰 인기를 끌었다. /션 인스타그램·성심당·국립중앙박물관


8.15㎞ 완주하고 기부도
국민임대 신혼부부 경남 창원에 사는 회사원 강동민(25)씨는 일요일인 지난 10일 광복절을 기념한 ‘815버추얼런’에 참가했다. 815런이란 말 그대로 광복절을 기념해 8.15㎞를 뛰는 것. 이를 인증하면 참가비 전액이 한국 해비타트를 통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집짓기에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버추얼런은 광복절 당일 참여가 어렵거나 지방에 jlpt고사장 사는 사람들을 배려해 8월 1일부터 24일까지 각자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뛰는 것을 말한다. 버추얼런은 참가비 5만원, 광복절에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달리는 오프라인 런은 8만1500원이다.
강씨는 “지난해 815런 캠페인의 좋은 취지를 알게 됐고, 특히 참가비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 쓰인다는 사실이 뜻깊게 다가왔다”며 “창원에 거주해 버추얼런으로 뛸 수밖에 없었지만, 창원 거리를 달리는 동안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내년에도 꼭 참가할 계획”이라고 했다.
가수 션(53·본명 노승환)은 벌써 6년째 광복절이면 81.5㎞를 뛴다. 소수점이 잘못 찍힌 게 아니다. 대략 서울에서 천안까지 거리를 뛰는 게 맞다. 그는 올해도 자신의 SNS에 “폭우 속이건 폭염 속이건 내가 광복절에 81.5㎞를 달리는 이유는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걸 바치신 독립유공자분들에게 드리는 내 방식의 감사 편지”라고 출사표를 썼다.
실제 815런은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션이 주축이 돼 시작한 캠페인이다. 소정의 기념품과 완주 메달도 받을 수 있는 데다, 2030 사이에서 ‘러닝 붐’까지 불면서 최근엔 신청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한국해비타트 관계자는 “1945년이란 숫자에 맞춰 오프라인 러너 4000명, 버추얼 러너 1만5450명씩 총 1만9450명을 모집했는데 오프라인의 경우 3일 만에 신청이 마감됐다”며 “815런을 통해 모금된 돈으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전국에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한 19채의 집을 마련했다”고 했다.
떡볶이 먹는 유관순, 도시락 싸는 이봉창
‘이것 하나만큼은 AI의 순기능이다.’
지난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생성형 AI로 복원된 ‘떡볶이 먹는 유관순 열사’ ‘가족을 위해 도시락 싸는 윤봉길 의사’ 모습이 공개되자 달린 댓글이다. 생성형 AI는 입력된 데이터(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 등)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에는 챗GPT를 활용한 ‘지브리풍 사진 바꾸기’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의 MZ세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가상으로나마 휴가나 일상을 선사하는 데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 최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걸어 나오는 영상을 만들어 조회 수 500만회를 기록한 30대 정성훈(유튜브 ‘Ai기억복원소’ 운영자)씨는 “처음엔 단순히 AI 복원 기술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현되는지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했다”며 “복원 영상을 보고 감동과 감사를 전하는 댓글과 주변 지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역사 속 인물들의 기록과 기억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독립운동가 AI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AI로 만나는 독립운동가는 MZ세대에겐 위인전보다 그 인물을 더 생생하게 느낄 기회가 된다. 부산에 사는 대학생 이모(23)씨는 “AI로 복원된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그 나이가 실감돼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교과서나 위인전을 통해 숱하게 유관순에 대해 배웠지만, 막연하게 ‘옛날 일’이라고만 여겨왔는데, 실은 나보다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에 나섰던 것”이라며 “지금 태어났다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텐데,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여름휴가 간 유관순 열사’와 ‘외교관이 된 안창호’의 모습. /유튜브 쏠리즘


‘태극기’ 대신 ‘데니 태극기’
과거엔 더러 ‘국뽕(자국에 대한 과한 자부심을 속되게 이르는 말)’ 취급을 받기도 했던 애국 마케팅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우리 전통문화를 녹인 K컬처의 인기와 함께 ‘태극기 뮷즈(박물관 굿즈)’ 등은 구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지난달 15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데니 태극기 뮷즈’는 펜을 제외한 4종이 모두 일시 품절됐다. ‘데니 태극기 키링’의 경우 첫 입고분 1000개가 완판돼 3000개 추가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 한모(21)씨는 “기존 태극기는 다소 뻔하고 또 정치적인 느낌도 들었는데 데니 태극기는 색감도 예쁘고 새로웠다”며 “원래는 키링을 사고 싶어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품절이라 펜을 사서 돌아왔다. 키링은 온라인몰 재입고분을 노려볼 계획”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태극기 앞에 붙은 두 글자. 최근 업계에서 활발하게 마케팅하는 태극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태극기’가 아니라 ‘데니 태극기’다. 데니 태극기는 조선 말기 고종 황제가 자신의 외교 고문이었던 미국인 오언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1838~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로, 그가 생을 마감한 후 이를 소중히 보관하던 유족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회오리 같은 역동적인 태극 문양과 푸른색으로 표현된 괘가 특징이다.
몇 년 전부터 태극기가 정치 성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데니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태극기의 상징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정치적 논란은 영리하게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광복절을 기념해 17일까지 대전 성심당에서 판매하는 ‘광복절빵’에도 ‘데니 태극기’가 상자에 그려져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에 광복절 미디어아트를 선보인 신세계백화점도 역시 ‘데니 태극기’를 활용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외벽 대형 전광판에 데니 태극기 영상이 송출된 모습. /신세계백화점


“의미 있는 경험 소비 원해”
지난해 성심당은 ‘광복빵’을 출시해 2주 만에 약 1억원어치(2만1870개)를 팔았다. 올해도 SNS상에선 일찌감치 구매자들의 인증이 뜨거웠다.
눈치 빠른 기업들도 발 빠르게 애국 마케팅을 노린 제품을 내놨다. GS25는 지난 6일 7첩 반상으로 구성된 ‘광복 80주년 도시락’을 출시하면서 패키지에 각 독립운동가들의 서체를 담았다. 윤봉길 의사가 남긴 어록인 ‘자유의 세상은 우리가 찾는다’를 적으면서 ‘자유의’는 김구 선생, ‘세상은’은 한용운 선생, ‘우리가’는 윤동주 시인, ‘찾는다’는 윤봉길 의사의 서체를 쓰는 식이다. 수익금 일부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해 사용된다.
해태제과는 광복 80주년 기념 연양갱을 80만개 한정 출시했다. 패키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서대문형무소, 안중근기념관, 김구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독립운동 상징지 5곳을 담았다. 연양갱은 1945년 출시한 ‘해방둥이’ 과자다. 스타벅스코리아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독립문역점과 환구단점의 8월 한 달 수익 전액을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광복절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닌 의미 있는 경험으로 소비하고자 한다”며 “일상 속 작은 소비가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이들에게 와 닿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