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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계엄·탄핵·대선 패배를 거쳐 극우화 논란까지 겹치면서 민심과 괴리된 정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단 우려까지 나온다. 당 안팎에선 이 같은 국민의힘의 위기엔 시스템의 붕괴가 크게 작용했단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민심 반영을 높이는 시스템을 마련해왔던 과거 역사와 달리, 오히려 민심과 괴리된 일부 세력만을 위한 시스템만을 고수하고 있단 비판이다. 당 안팎에선 국민의힘이 되살아나기 위해선 민심을 반영한 메이플브로커 시스템의 정비가 필수적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오는 22일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개최할 전당대회에서 당심 80%와 민심 20%를 반영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할 예정이다. 지난 6월 3일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지난해 6·27 전당대회 당시 채택했던 80%-20% 비율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23년 4대보험 가입기간 3월 8일 열렸던 국민의힘의 전당대회에서 당심 100%로만 당대표를 선출했던 것에 비하면 민심 반영 비율이 개선된 것이지만, 제대로 된 민심을 반영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과거 국민의힘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이 위기가 닥쳤을 당시 민심 반영 비율을 대거 높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역사를 고려하면 민심을 중시하는 정당으로의 모습을 되찾기엔 어렵다는 얘 별내선 노선 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논의를 거쳐 민심을 대거 반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되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04년이 대표적이다. 한해 앞선 2003년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져 아수라장이 돼 있던 한나라당은 국면을 전환해보고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가 lg미소금융재단 거센 역풍을 맞았다. 이에 17대 총선(2024년 4월 15일)을 한달여 앞둔 3월 9일 한나라당 당대표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원 50%와 국민 50%로 구성된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당시 총선 참패가 예상되자 한나라당이 민심 50%를 반영하는 파격적인 지도부 선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후 3월 23일 개최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기청지원 일반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50%)와 전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의 직접투표 결과(50%)를 합쳐 51.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39년만에 야당의 여성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 직후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시가 400여억원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철수해 여의도공원 인근 공터에 천막 당사를 차리며 취임 첫 행보를 밟았다.
그리고 당시 전당대회에서 함께 경쟁했던 김문수 의원(現 당대표 후보)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임명해 공천 개혁을 맡겼다. 김문수 당시 공심위원장은 "죽을 각오로 한나라당을 대청소하겠다"고 선언하며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중진 37명을 불출마 시키는 등의 개혁을 통해 궤멸 위기를 딛고 121석을 확보하는 결과를 일궈냈다. 이 같은 시스템 개혁은 200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2004년 3월 24일 당시 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첫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의장석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에도 한나라당의 시스템 개혁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11월 한나라당은 당원대표자대회를 열어 대선후보 경선에 일반국민의 의견을 50% 반영하는 당헌 개정안을 마련했다. 전당대회 대의원 20%, 당원 선거인단 30%, 일반국민 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를 반영해 비(非)당원의 참여율이 절반에 이르게 하는 내용을 당헌에 명시한 것이다. 이는 다음 해인 2006년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으로 이어지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나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2006년 7월 치러진 8차 전당대회부터 당심 70%와 민심 30%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역선택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민심 비중을 소폭 줄이고 당원의 의견을 더 많이 수렴하겠단 취지에서다. 이 룰은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의 제1차 전당대회 당시까지 유지됐다. 이준석 현 개혁신당 대표가 당시 국민의힘의 대표로 선출된데는 민심 30% 반영이 큰 효과를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스템은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2023년 3·8 전당대회에서의 당대표 경선 룰을 당원 100%로 개정해 민심과의 괴리를 벌렸을 뿐 아니라, 일각에서 제기되는 신천지·통일교·전광훈 목사(자유통일당)쪽 신도들이 대거 입당해 당원 구성이 오염됐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권력이 가장 강했을 시점인 2023년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사석에서 "당원투표 100%가 낫지 않느냐"라고 말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민심 이반이 심각해질 것이란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2023년 전당대회 경선룰 개정을 이끌었던 정진석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 당의 20·30·40대 당원은 전체의 약 33%"라며 "50대 이상 연령층이 책임당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당원 수가 80만명에 육박한데다 연령대별 구성도 다양화 돼있으니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꺼내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출된 김기현 지도부는 윤 전 대통령의 개입 아래 치러진 강서구청창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국민의힘은 이어진 2024년 4·10 총선에서 108석만을 건지는 대패를 맛봤다. 민심으로부터 큰 심판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22년 12월 23일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당원투표 100%'와 '결선 투표제',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당헌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DB


일부 종교단체의 당원 가입 역시 시스템 붕괴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당은 당원들의 뜻으로 움직인 민주정당이었지만 그가 들어오면서 당은 사이비 종교집단과 틀튜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꼭두각시 정당이 돼 버렸다"며 "정당이 일부 종교집단 교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건 정당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집단에 불과하고 지도부 선출 등 각종 당내 경선이 교주 지시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건 민주정당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당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시스템이 재정비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주자들이 시스템 개혁과 공천 개혁을 이야기 하는 것도 같은 궤에서다. 특히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스템의 개혁이 없다면 당 자체의 존립이 위험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당원들의 성향이 과격해지거나 오염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만큼 이번에는 확실한 시스템을 갖춰서 나오지 않으면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투명한 시스템이 준비돼야 국민들이 당이 변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도 "전당대회 때 민심 반영을 높여야 된다는 얘기가 나왔던 건 중도층 유권자한테 항상 열려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라며 "대중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늘 우리를 지지하거나 중도층 국민의 생각을 묻고, 그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비중을 늘리는 게 대중정당으로 나아가는데에는 필수 조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애초에 미리 이번 전당대회 룰을 민심 반영 비율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고쳐놨다면 윤석열 재입당이나 극우화 같은 논란이 이렇게 크게 일어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미 여론조사 상으로 이념 성향이 보수라고 말한 사람들 중 43%만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한 만큼, 확고한 개혁 없이는 앞으로 더 큰 폭의 지지율 하락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