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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출판가를 강타한 한 신예 작가의 소설이 여기 있다. 영화인의 질투를 부르고, 넷플릭스보다 재밌다는 격찬을 들으며 7~8월 서점가를 휩쓸고 있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 7월 한 달간 가장 많이 팔린 책,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는 문학 분야 석권은 물론 타 장르들까지 제치며 올여름 서점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 [좌]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우] 교보문고 광화문점 매대 / 사진=필자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보령제약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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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의 신작 소설집 <혼모노>는 문학 분야 석권은 물론 타 장르들까지 제치며 올여름 서점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 [좌]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우] 교보문고 광화문점 매대 /나스닥100
사진=필자 제공


지난 3월 출간된 <혼모노>는 독자들의 입소문과 SNS 호평에 힘입어 6월 초부터 여름 내내 타 장르들을 제쳐가며 ‘N주 연속’ 베스트셀러 돌풍을 일으켰다. 실제 블로그에는 다수의 독후감이, 유튜브에는 책 리뷰 영상이 오르내리는 등 독자의 반향이 넘쳐났다. 지난해 한강의 노벨문학상황금성어플
수상 이후, 근간인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와 함께 ‘문단 여풍’으로 주목받으며 ‘한국문학 전성시대’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혼모노> 열풍에는 배우 겸 출판사 ‘무제’ 대표 박정민의 믿음직한 추천사가 한몫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충무로는 성해나라저출산관련주
는 걸출한 배우를 잃었다. 그야말로 의문의 1패.’ 성해나의 작품은 실제로 그 인물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구체적이면서도 명료하다. 실로 우습고 담백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연기력이다. 책을 읽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명의 인물과 한 곳의 장소를 검색해봤다. 완전히 속아버렸다. 질투 나는 재능이다. 성해나의 앞에서 나는 그저 ‘존나 흉내만 내는 놈’에 불과하다.”
－배우 박정민 <혼모노> 추천사 중


미적 충격과 존재론적 불안…<혼모노>의 ‘낯설게 하기’

올해 나이 31세, 등단 7년 차인 성해나는 문단 중진들 못지않게 필법이 노련한 작가다. 특유의 촘촘하고 집요한 묘사, 한자어 등 전문적 어휘 사용, 완급을 조절해가며 독자를 몰입시키는 서사 구성은 젊은 작가의 작법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숙련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소재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서사화한다는 점에서 그는 주목받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혼모노>가 그 결정판이다.

“신애기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렁인다. 그 불길에 저애에게 잠시 가졌던 연민이며 동질감, 할멈을 향한 애증과 경외심도 모조리 타버린다.”
－성해나 단편 ‘혼모노’ 중


<혼모노>는 표제작을 포함, 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무속·가족사·현대사·팬덤 현상·직장 생활·청춘 스케치 등 순수와 대중을 아우른 소재 선택과 주제 의식이 매력적인 책이다. 지난해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받은 표제작이 역시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다. 접신 능력이 약해진 나이 든 박수무당이 신통하기 그지없는 어린 신애기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며 동분서주하는 내용이다. 새파란 애송이지만 영험하기로는 ‘진짜’인 혼모노(ほんもの)의 출현으로 30년 박수 인생이 ‘가짜’, 즉 니세모노(にせもの) 취급을 받는 현실. 자존감이 무너진 늙은 박수는 점괘도 작두 타기에도 실패하고, 평소 비즈니스 관계로 막역하던 국회의원에게까지 버림받게 된다. 좌절하던 그는 기어이 신애기의 굿판에 쳐들어가 작심하고 유아독존의 신내림 한 판을 결행하는데…. 작가 성해나는 ‘혼모노’라는 단어가 점차 조롱성 은어로 변질해 가는 현실 속에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 그것을 규정짓는 사회적 잣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는 무당 업계의 세대 갈등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표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 사진출처. 문학동네·창비 유튜브 쇼츠 캡처"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8/ked/20250818151827888jtmj.jpg" data-org-width="1000" dmcf-mid="ysSWFezTSS"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ked/20250818151827888jtmj.jpg" width="658">

배우 박정민의 추천사로 화제가 된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는 무당 업계의 세대 갈등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룬 표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 사진출처. 문학동네·창비 유튜브 쇼츠 캡처


이처럼 본 소설집의 특색은 작품마다 중심인물의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하는 혼모노의 등장, 그로 인해 독자들이 받는 미적 충격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섬찟하고 불가해한 상황의 조성. 기존의 세계 인식과 자신의 존재 의식을 기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카오스의 구현은, 거꾸로 타성에 젖어 살아온 우리의 인간사를 잠시나마 돌아보게 만든다. 혼모노적 인물, 혼모노적 사건에 맞닥뜨리면서 내가 믿어온 관계, 가꿔온 신념, 이해한 현상의 기준이 흔들리고 개개의 장막이 슬며시 벗겨진다. 독서의 미적 충격은 몰입의 강렬한 쾌감을 부르고, 독자들은 단조로운 서사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얻게 된다. 내적 불안감은 감각적 전개와 만나 카타르시스를 분출시킨다.

“방금 전의 일들이 다 허구 같았다. 펑, 무언가 터지던 순간도, 그 순간의 감정도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허구 아닐까 하는, 내가 실패한 영화를 한 편 본 게 아닐까 하는, 별 반 개도 아까울 만큼의 너절한 서사. 치덕치덕 처바른 클리셰. 질문도 남지 않고 더할 말도 없는 싸구려 엔딩. 감독이 지고 만 영화.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화. 그렇게 지독히도 못 만든 영화를 본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런데 왜 생각할수록 더…… 허무해질까. 모든 게 흠 없이 온전한데 왜 나만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살점이 다 뜯겨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괴로운가. 왜 지독히도 헛헛한가.”
－성해나 단편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 주인공은 애정하는 영화감독의 비윤리적 행위까지 옹호해가면서 찐팬의 자세를 고수하지만, 정작 감독의 공개 사과를 대면하자 극심한 내적 혼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 건축학 교수 여재화는 자신이 고문실 축조를 맡긴 제자 구보승의 끔찍한 설계에 되레 기겁하게 된다. ‘잉태기’에서 주인공은 딸의 출산과 미래를 두고 시아버지와 지독한 갈등을 겪으며 그를 혐오하지만, 핏줄에 대한 집착이라는 측면에서 둘은 공통분모를 이룬다. 우리 안의 삿된 욕망을 돌출시켜 직면하게 함으로써 삶에 대한 관습적 태도를 해체하는 것. 이른바 성해나 소설의 ‘낯설게 하기’ 전법이다.


“성공적인 해체는 하나의 텍스트를 변화시킨다. 해체는 텍스트를 보다 이국적인 것으로, 즉 우리에게 낯선 것으로 만든다. 하나의 텍스트가 하나의 전통, 즉 우리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메시지 또는 정치적 교의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낯설게 만들기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해체는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관념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키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페넬로페 도이처 저, 변성찬 역, , 웅진지식하우스, 2007


미화와 윤색으로 이룩한 상징계의 장막이 한 겹 찢어지자, 그 사이로 마치 괴물처럼 고개를 내미는 실재계의 공포. 외면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는 실체적 진실의 편린들. 그것은 너무도 익숙해서 징그러운 ‘불쾌한 골짜기’ 같은, 어쩌면 허위 의식에 가득 찬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3년 무명 딛고 젊은 작가로 주목…“소설은 집 짓기”
성해나는 199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유년 시절 KBS 문학 드라마 시리즈 ‘TV 문학관’을 즐겨보며 할머니에게 줄거리를 들려주던 재미로 문학과 가까워졌다. 내향적 성격으로 일기를 주로 쓰다 이청준·조세희의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입문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소설을 썼고, 대학생 때부터 <한겨레> 손바닥문학상, 계명문화상 등을 수상하며 문재를 발휘했다.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등단의 기쁨도 잠시, 성해나는 데뷔 직후 3년간 지면 청탁도 없고 작품 투고도 반려되는 고통의 무명 시절을 견뎌야 했다. 화제작 ‘혼모노’ 역시 투고했다가 반려된 적이 있었다. 힘겨운 시기에 자신을 다잡아준 건 규칙적인 운동과 자기 확신이었다. 지금도 그는 집필 전 아침마다 런지·스쿼트·플랭크로 몸을 풀고, 매일 24시간을 계획적으로 쪼개가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글을 쓰되 하루 생산량은 원고지 20매로 제한하며 컨디션을 관리한다고 한다.

등 작품집이 독자와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 있는 젊은 작가’로 올라선다.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8/18/ked/20250818151829182omaq.jpg" data-org-width="1000" dmcf-mid="W83ytR7vT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ked/20250818151829182omaq.jpg" width="658">

성해나는 등단 직후 3년간의 무명 끝에 <빛을 걷으면 빛> <두고 온 여름> 등 작품집이 독자와 문단의 호평을 받으며 ‘인기 있는 젊은 작가’로 올라선다. / 사진출처. © KYOBO BOOK CENTRE


성해나는 2022년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이 세대 간 갈등, 타자와의 관계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했다는 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올라서기 시작한다. 특히 이듬해 펴낸 장편 <두고 온 여름>이 재혼가정의 결합과 이별을 통해 가족애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거머쥐며 문제적 신예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지난해에는 YES24가 실시한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성해나에게 소설 쓰기는 한 채의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하루하루 작업량을 정해놓고 정교한 설계부터 부단한 재료 수집, 꼼꼼한 감수까지 꾸준하게 이어 나간다. 습작기부터 이어온 필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주춧돌 쌓기. 건축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이야기의 개연성과 핍진성을 구현하기 위해 메모·인터뷰·현장답사·간접체험 등 전방위적 취재를 수행한다. 아는 만큼, 부지런한 만큼 쓸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경청하듯 텍스트를 읽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지난한 작업 끝에 소설이라는 성해나의 집은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완성된다. 근작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 역시 경주 고택의 재건, 즉 건축이 중심 소재다.

“저는 건축서를 즐겨 읽어요. 건축서를 읽으면서 작법을 익히기도 하고, 읽기에 지칠 때는 건축 작품집을 꺼내 맥락이나 순서에 개의치 않고 보는 편입니다. 무결하게 짜인 것들에서 안락함을 느끼나 봐요. ‘짓다’라는 단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나, 다수의 작가가 소설 창작을 집짓기에 비유하는 것처럼 문학과 건축은 한 몸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3년 6월 2일 자 ‘채널예스’ 성해나 인터뷰 중


불가해한 타자와 세계…부단한 이해의 노력


“저기, 김여진씨. 혹시 상여금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감정 쌓인 거예요?
수잔의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요.
진이 한숨을 쉬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럴 때 나는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 걸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어색함과 불편함이 흐르는 가운데 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갑분싸네, 이거.”
－성해나 단편 ‘우호적 감정’ 중


흔히 인생에는 3가지가 없다고 한다. 비밀이 없고, 공짜가 없고, 정답이 없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세상은 고사하고 한 인간을 이해하기도 어렵다. <혼모노>에 수록된 단편 ‘우호적 감정’에서 스타트업 회사원인 주인공은 대기업 출신 중견 동료 진의 부적응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마을 재생 사업에 대한 그의 독단적 결정에 끝내 씁쓸함을 느낀다. 진의 지나친 언사로 또 다른 동료 수잔이 떠나가며 “너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라고 속삭이던 말이 주인공 귓가에 맴돈다. 진의 사업적 판단과 주인공의 우호적 감정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주체의 환대는 그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타자와의 불통으로 빛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성해나의 소설은 주요 사건과 작중 인물에 대해 선악을 선명하게 가르지 않고 하나의 인상으로 그 형체를 남겨둔다. 서사는 고조되며 절정으로 치닫지만, 결말을 매듭짓기보다 반쯤 열어놓는다. 타자와 세계의 불가해성,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승인하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네 동시대와 호흡하는 공감 철학이다. 애쓰는 감정도 어긋날 때가 있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질 때도 있다는 것. 그러나 실패와 자책을 거듭하더라도 환대의 자세, 연대의 마음은 내려놓지 말자는 것. 정답 없는 인생이라고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되고,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응전해야 한다는 게 바로 ‘성해나식 담론’이라 할 것이다.
성해나는 격월간 문예지 <릿터(Littor)> 2025년 6/7월호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늘 조심스러움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라며 “(차라리) 저는 저와 먼 인물을 그릴 때 오히려 이해하는 게 조금은 편하더라. 저와 비슷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는 건 늘 어렵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Umuntu ngumuntu ngabantu.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비로소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사람 때문에 상처 입고 고통받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살아가고 살아난다. 실수하고 나약하고 불안정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고 사랑하고 살아내는 사람들.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성해나 작가 ‘네이버 블로그’ 게시글 중







LP 수집과 목공예가 취미인 성해나 작가는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독자, 즉 사람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며 창작을 이어오고 있다. / 사진출처. 성해나 작가 ‘네이버 블로그’ 게시물 캡처


진심 바쳐 혼신 다해…아집 사르는 구원의 씻김굿 한 판
표제작 ‘혼모노’ 결말에 이르러 늙은 박수는 눈엣가시인 신애기로 점쟁이를 갈아탄 국회의원의 굿판을 뒤집는다. 의원에게도, 심지어 신내림을 받아온 장수 할멈에게까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박수는 배신감에 사무친 굿판으로 좌중을 질겁시킨다. 신통력이 흔들리는 불안감에 한때 무속용품 가게에서 모형 작두까지 찾아본 그였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니 이젠 이판사판이다. 같잖은 신애기도, 치졸한 국회의원도, 지엄하신 장수 할멈도 더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과장되게 눈을 까뒤집고 억지로 몸을 떨며 신접 흉내를 내는 것은 지금 내게 무용한 짓”일 뿐, “자연스럽게 몸이 떨리고 눈이 뒤집히고 오금이 무지근하게 당겨오며 발바닥은 뜨겁고 끈적한 피로 흥건”한 박수의 신명 나는 한판 승부. 혼모노에 집착하며 무속인으로서 알량한 권세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던 그간의 아집과 번뇌를 살라 먹는 무아지경의 푸닥거리, 그야말로 ‘매운맛’ 굿판이다.

“구름도 다 사라진 땡볕 아래, 판수도 악사들도 점점 지쳐가는 와중에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피범벅에 몰골도 흉하겠으나 시야가 환하고 입가엔 미소까지 드리워진다. 신령 근처에라도 가닿은 것처럼 몸이 가뿐하고 신명이 난다. 장단이 빨라질수록 나는 고조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성해나 단편 ‘혼모노’ 중


작두날에 피 칠갑이 되는 줄도 모르고 아수라의 굿판을 펼치는 늙은 무당의 결기처럼. 미학적 광기로 타오르는 성해나의 소설은 인식의 저편, 관념의 이계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그의 씻김굿은 소란으로 끝나지 않고 해원의 지평을 열어놓는다. 작품의 여운 속에서 어딘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곧 관습적 가치관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성찰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 탈아의 자각이란 쇄신의 반전을 득하는 정신세계의 소신공양일지니. 성해나가 풀어놓은 욕망의 인형들을 직면할 때, 아집의 독사과를 파먹으며 반성할 때, 우리는 가식으로 점철된 혼모노의 환영에서 깨어나 자기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몽환포영, 꿈 같고 허깨비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관념의 허울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일방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찐으로’ 자기 중심을 지켜나가는 길. 진심을 바쳐 혼신을 다하는 생이야말로, 진정 혼모노의 삶이라는 사실. 혼모노의 길은 누가 부여하는 게 아닌, 스스로 개척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 지난여름 우리에게 성해나라는 이름이 가장 뜨겁게 느껴진 까닭이다.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