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학교폭력변호사 [정동칼럼]왕사남과 흔들리는 사법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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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질서와 명분을 힘으로 뒤집는 무도함과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소년의 목숨, 단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하는 비극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조선 초기의 이야기를 현대의 관점에서 풀어냄으로써 그 시대를 현대로 순간이동시킨다. 단종과 태산이 공유한 희망, 즉 무지렁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희망은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기본 이념에 가깝다. 영화를 보면서, 이들은 최소 400년(동학은 단종 사망으로부터 약 400년 후에 태동한다)을 앞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종의 복위는 당대의 명분인 왕조의 정통성을 살린다는 측면에 부합할 뿐 민초의 삶과는 상관없는 주제인데, 영화에서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이들은 백성을 외친다. 이 또한 공동체는 주권자인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민주주의적 관점에 가깝다. <왕사남>의 주제의식은 단종의 각오, 즉 ‘우리의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불의에 저항했다는 기록을 남겨 조선의 미래가 힘에 굴복하지 않게끔 하겠다’는 각오로 집약되는데, 이 각오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의 각오와 맞닿는다.
고증의 실패로 보이기는 하지만, 소재와 관점 덕분에 우리는 <왕사남>을 보며 숙부로부터 배신당해 죽은 불쌍한 왕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로 대표되는 무도한 무력통치에서부터 가깝게는 헌법질서를 군으로 짓밟으려 했던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떠올리게 된다. <왕사남>은 그렇게 시대정신을 담았고, 시대정신은 엉성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울림이 <왕사남>을 천만 영화로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위 ‘사법 3법’의 입법 과정은 판사들에게 깊은 충격과 자괴감을 안겼다.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모두 이번에 처음 논의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법체계와 재판 제도, 법원 조직의 구성을 크게 변화시키는 내용이기에 그 도입을 논의할 때에는 재판 실무를 담당하는 판사들도 논의의 주체로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전 사법개혁 논의와 같이 수개월에 걸친 공론화 및 숙의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런데 그 믿음과 예상이 무참히 깨졌다. 사법부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 입법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판사들의 의견은 존중받지 못했다. 판사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서 사법 3법이 전격적으로 공포, 시행되었는데 사회는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법 신뢰가 무너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법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법 신뢰 저하를 큰 문제로 인식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느슨한 만듦새에도 시대정신을 담아내어 깊은 울림을 주며 천만 영화에 등극한 <왕사남>을 보며 문득 그 생각에 다다랐다. 우리 법원은 만듦새가 정교한 재판들을 신속하게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시대정신을 담아내진 못하는 것 아닐까. 불의 앞에서 저항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던가. 나는 여기에서 법원이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군부독재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고요했던 법원의 모습과 사법 3법 입법 과정에서 분주했던 법원의 모습이 크게 대비된 것도 사실이다.
이례적으로 정교하고 신속했던 재판만큼이나 헌법 침해에 단호히 대응하는 태도도 함께 보여주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법원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지 성찰하지 못하고, 현재의 사법불신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재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데 그친다면, <왕사남>이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법원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3월14일 아침, 내가 사는 포르투갈에도 긴급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서거 소식이었다. 향년 96세였다. 고령이었기에 가끔 그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다.
작년 여름, 평생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학문적 삶을 함께했던 부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나는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손으로 쓴 짧은 편지였다. 글 사이사이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69년 초였다. 반세기를 훨씬 넘긴 인연이다. 그때 그는 서른아홉, 나는 스물넷이었다. 그는 젊은 교수였지만 이미 명성은 대단했다. 당시 유럽 지성계를 뒤흔들던 ‘비판 이론’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의 지도 덕분에 나는 1972년 여름학기에 학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한 학기 전 그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을 떠났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카를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와 함께 뮌헨 근처 슈타른베르크에 새로 설립된 막스플랑크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대학을 떠난 배경에는 당시 학생운동 내부의 급진적 흐름과의 갈등이 있었다. 그는 이를 ‘좌익 파시즘’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그는 1982년에 다시 프랑크푸르트대학으로 돌아왔고 1996년 은퇴했다.
하버마스는 단순히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철학자’라는 이름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사유는 이미 세분화된 현대 학문 세계를 비판적으로 가로지르며 현대 사회의 핵심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가 제기한 개념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생활세계의 식민화’였다. 돈과 권력이라는 체계적 매체가 의사소통적 이해에 기반한 생활세계로 침투하면서 인간의 상호이해가 왜곡된다는 통찰이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은 의사소통 속에서 형성되어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체계의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강단에만 머무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나치와의 사상적 관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던 마르틴 하이데거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독일 사회에서 나치 범죄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학자 논쟁’에서도 그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또한 가치중립적 과학을 주장하던 실증주의에 맞서 이성의 해방적 관심을 강조하며 이른바 실증주의 논쟁을 촉발했다. 근대는 이미 끝난 시대가 아니라 ‘미완의 기획’이라는 그의 주장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철학적 응답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사유는 학문적 논쟁에만 머물지 않았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그는 새로운 헌법에 기반한 통일을 주장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의 발언은 언제나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유의 기준을 제공했다.
1996년 4월 서울 방문을 앞두고 그는 강연 원고에 대해 가감 없는 비판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다. 고향을 밟지 못하는 제자를 대신해 내 부친을 만날 계획도 세웠지만 초청 측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대신 서울의 한 신문사가 전달해달라며 맡긴 ‘백제 금동대향로’를 그는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보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2003년 가을, 나는 3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사실상 고행의 길이 되었다. 9개월 동안 이어진 시련 속에서 그는 독일 정계와 외교계, 학계 인사들에게 나의 조속한 석방을 호소하며 가족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2년 전 여름 그는 한 편지에서, 그런 쓰라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옛날의 송두율’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적어 보냈다. 사람의 예감이란 참으로 묘하다. 올해 3월10일, 나의 독일어 저서 (현대의 단층선 - 아시아와 유럽의 사잇길)가 출간되었다. 동서양의 경계인으로서 현대를 관찰하고 분석한 세 번째 단행본이다. 이 책에는 나의 철학적 여정에서 만난 하버마스와 그의 소통 이론에 대한 평가도 담겨 있다.
나는 서명이 들어간 증정본을 그의 독일 주소로 보내려고 했다. 독일과 포르투갈 사이의 소포는 보통 열흘에서 2주일이 걸린다. 출판사에서 이미 발송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혹시라도 그가 이 책을 받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버마스 서거.”
그 짧은 문자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이제 그는 제자의 책을 손에 쥘 수 없는 세계로 떠났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유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대화와 설득의 공론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증오와 선동이 들어서는 시대일수록 그의 철학은 절실하다. 공론장의 이성을 끝까지 믿었던 철학자. 그가 남긴 질문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졌다.
전북도가 부안군을 피지컬AI(인공지능)·방위산업·수소에너지 산업이 결합한 첨단 제조 거점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9조원대 새만금 투자에 이어 지역 기반 중견기업인 DH그룹까지 전북 서부권 투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농어업과 관광 중심이던 지역 산업 지형이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전북도와 부안군은 13일 전북도청에서 DH그룹과 부안 제3농공단지 내 10만1836㎡ 부지에 제조기지를 조성하는 투자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광주에 본사를 둔 DH그룹은 가전제품과 자동차 부품 제조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중견기업이다. 매출 1조원을 넘긴 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부안 투자를 통해 피지컬AI(Physical AI·실체형 인공지능)와 수소 산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협약에 따라 DH그룹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3단계에 걸쳐 총 1500억원을 투입한다. 단순 생산시설을 넘어 연구개발(R&D)과 전문 인력 양성 기능을 결합한 ‘미래형 복합 제조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1단계 사업은 900억원 규모의 ‘피지컬AI 스마트팩토리’ 조성이다. 산업용 로봇과 자율주행이동로봇(AMR)이 공정 전반을 담당하는 무인 물류·생산 시스템을 갖춘다. 2027년 착공해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며 드론과 무인항공기 기반 방위산업 부품 생산라인도 함께 구축될 예정이다. 전북도가 육성 중인 ‘K-방산’ 산업 기반의 한 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단계 사업은 350억원을 투입하는 수소모빌리티 부품 공장 건립이다. 액화수소 연료탱크 등 수소차 핵심 부품을 생산해 전북의 수소 산업 생태계와 연계한다. 이어 3단계로 250억원 규모의 ‘미래비전 연구단지’를 조성해 도내 대학과 협력하는 산학 인재 양성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전북도는 이번 투자가 완료되면 직접 고용 310명을 포함해 협력업체와 연관 산업까지 합쳐 최대 900여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투자는 부안군 산업 구조 고도화 측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그동안 부안은 변산반도 등을 중심으로 한 관광 산업이나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 유치가 집중됐다. 첨단 제조업 유치에 성공하면서 안정적인 소득 기반과 인구 유입 효과도 기대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입지적으로도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와 인접해 있어 현대차그룹 부품 공급망과 새만금 수전해 수소 생산기지 등과의 에너지·물류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정권 DH그룹 회장은 “가전과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축적한 정밀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AI와 수소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안에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이번 투자는 전북의 미래 산업 생태계가 기업들에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인허가 신속 처리와 세제 지원 등 행정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권익현 부안군수도 “부안이 첨단 제조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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