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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말
양란 때 구례를 중심으로 호남과 영남에서 활동했던 이원춘 장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조선 수군 재건 전략에 대해 이순신과 구례에서 매일 논의했다.
'한증막 같은'이 아니라 '한증막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구례의 산하를 감싼 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완연하다. 그러나 아직도 한낮 날씨는 지난여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석주관 칠의사를 왼쪽으로 끼고 성벽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좋은종목
몇 계단 오르지도 않았는데 땀이 온몸으로 낙숫물처럼 쏟아진다. 몸을 향해 달려드는 텁텁한 습기가 숨구멍을 막아 곧 숨을 쉬지 못할 것만 같다. 예전의 여름도 덥긴 했지만 요즘처럼 습기가 많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기후도 이제 아열대로 접어들었음이 확실하다.
그래도 성벽으로 다가가니 주위에 핀 금낭화며 원추리 꽃들이 잔바람에 몸을 맡긴 채릴게임공략법
유연하게 춤을 춘다. 저들도 사는 게 힘이 들 테지.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내지 않고 바람 불면 바람에, 비 내리면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으면서도 예의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또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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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주관에 자리한 칠의사 지위단에 세월의 무게를 인 이끼가 자라고 있다. 2024년 8월 9일.
ⓒ 하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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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석주관성에 왔다. 섬진강대로 4638-8(토지면 송정리 525-1)에 자리한 이 산성은 1597년 10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쳐들어오는 왜적을 맞아 구례 현민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던 피의 현장이다. 총 다섯 차례에 걸친 이 싸움에서 세 번은 이겼지만 두 번은 져 3500여 명의 구례 현민과 화엄사 승병 15주식공부
3명이 몰살당했다.
이미 전기 임진왜란 때 조선을 한차례 잔인하게 짓밟았던 적장 시마즈 요시히로(1535~1619)는 조총과 화포 등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병력 1만여 명을 이끌고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이 성에서 저항하던 구례 현민들을 무도하게 학살했다.
번연히 보이는 죽음 앞에서 낫과 쇠스랑과 도리깨 들을 들고 이리로 모여든 구례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이었단 말인가. 가난했지만 온 가족 둘러앉아 저녁밥을 먹던 정경과, 그때 보았던 자식들의 웃던 모습과, 정겹게 피어나던 마을의 굴뚝 연기와, 논밭에 벌여놓은 곡식들과, 서시천이나 봉산에 쌓아놓은 기뻤던 추억들에는 미련이 없었던가. 가슴에 아른거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살던 터전을 빼앗기면 모든 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구례사람들은 전기 임진왜란 말엽에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기에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었다.
뻔한 죽음 앞에서 어찌 적에게 맞설 수 있을까
▲ 곡성에서 흘러온 섬진강은 이순신이 순천을 오가던 잔수나루부터 태극 모양으로 굽이쳐 남해로 들어간다. 2025년 9월 5일.
ⓒ 한상무
1593년 7월 27일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승리한 일본은 성안에 있던 6만여 명을 모두 죽이고는 여세를 몰아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경남 사천과 하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그런 다음 구례를 거쳐 남원으로 진격했다. 남원성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함락시켜야 할 요새였다.
적병이 갑자기 구례현으로 들이닥쳤다. 불의에 적이 이르렀으므로 사민(士民)들이 태반이나 상해를 입었는데, 적은 마을을 불태우고 성곽(구례읍성)을 무너뜨렸다. 남원의 군민이 이 소식을 듣고 놀라 흩어져 하룻밤 사이에 성을 비우고 빠져나갔다.<선조수정실록> 27권
그러나 왜적은 남원성 공략에 실패하자 다시 구례를 거쳐 남해안으로 퇴각한다. 이들이 끝까지 싸우지 않은 이유는, 이 시기가 명과 왜의 강화 회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1593년 7월 회담을 시작하면서 이 두 나라는 조선을 배제한 채 협상이 끝날 때까지 상호 불가침을 약속했다. 그러나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아무래도 옹색했던 일본은 이후 모든 왜군을 남해안에 산재한 왜성으로 물리고는 4년간 웅크려 있었다.
▲ 정유재란 때 맨몸으로 왜적에 항거했던 일곱 명의 의사를 모셔놓은 석주관 칠의사 지붕 위로 가을 하늘이 맑게 떠 있다. 2024년 8월 9일.
ⓒ 하지권
1597년 6월 4일,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구례에 들어와 하룻밤 자고 도원수 권율(1537~1599)을 만나러 순천으로 떠난 사이, 구례 현감 이원춘(?~1597)은 으레 그랬듯 하루도 빠짐없이 토지면 석주관성에 나가 산성을 방비하고 있었다. 적을 맞이할 구례의 전진기지였으므로 그 중요성은 현감으로서 통감하고도 남았다.
'적은 반드시 저 섬진강 물길과 이 외길로 들어와 남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원춘 현감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주성이 무너졌으므로 이제 호남으로 들어가는 동쪽 관문은 남원성이었다. 하동에서 바로 섬진강을 건너 여수와 순천으로 쳐들어가는 방법이 있었으나, 그 바다는 이미 이순신의 바다였다. 장군은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을 경남 거제도 옆 한산도에 전진 배치시켜놓고, 왜 수군을 부산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게 묶어놓고 있었다. 이미 남해에서 18전 18승을 일궜던 이순신은 이름만으로도 적을 주눅 들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석주관 성벽에 올라서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본다. 구례를 지나온 강은 지리와 백운 사이로 자신의 몸을 비틀며 날렵하게 남해로 빠져나간다. 그 강에 땅거미 내려앉고 있다. 저물녘 들판에서 하루 일을 끝낸 구례의 농부들은 저 강물에 삽을 씻겠지. 그러고는 따스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테다. 평화나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아무 일 없는 일상. 먹을 걱정 크게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
그러나 428년 전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왜적과 명나라 외군이 조선 땅을 활개 치며 돌아다녔고, 조선의 왕은 존재감이 신통치 못했다. 백성을 지키는 건 나라가 아니라 백성 자신들이었다. 관군은 적과 싸워 이렇다 할 승기를 잡지 못했고, 뿔뿔이 흩어져 통신도 잘 닿지 않았다.
'호남 살육 전쟁'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정유재란은 호남을 주 타깃으로 삼은 전쟁이었다. "호남에 살아 있는 건 개나 돼지까지도 죽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1597년 3월 조선에 진출해 있는 장수들에게 이 같은 명령을 다섯 차례나 하달한다. 지난 임란 초기 부산으로 상륙해 한양과 명나라만 보고 직진하다시피 하느라 옆에 있는 호남을 상대적으로 간과했다. 그 결과 수많은 의병장들이 호남에서 발기해 전국 곳곳에서 왜군과 맞선 바 있다.
이순신과 이원춘,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서시천과 섬진강이 읍내를 감싸고 돌아 예부터 물산 풍부하기로 소문났던 구례. 그러나 그때엔 강이 물길 역할을 해 적을 이롭게 하기도 했다. 2025년 9월 5일.
ⓒ 한상무
그렇다고 괜찮은 관군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전북 웅치·이치전투에서 맹활약하고,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순국한 남원 사람 황진(1550~1593) 장군이나,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우연히 수장을 맡아 항전했고, 이후 왜군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김시민(1554~1592) 장군 같은 이들이었다. 남해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이야 두말할 것 없고.
그리고 구례 현감 이원춘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도체찰사(비상시에 군대를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 정철의 명령으로 전라좌도의 병력 5천을 이끌고 영남 의병장 정인홍, 호남 의병장 최경회 등과 성주성을 협공했고,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그의 아들 이인민과 함께 김시민 장군을 보위하기도 했을 정도로 전장에서 맹활약한 그다.
그 뒤 도체찰사 이원익(1547~1634)은 그를 조방장에 임명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구례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키도록 명령했다. 1597년 6월 22일 권율을 만나고 순천에서 돌아온 이순신이 구례를 떠나는 7월 4일까지 13일 동안 매일 이원춘과 만나 향후 전개될 정세 예측과 조선군의 전략을 의논한 것도 이원춘의 실전 감각을 높이 산 까닭이리라.
아마도 그는 장군에게 호남의 관문인 구례와 석주관성의 지리적 중요성에 대해 그동안 연구한 바를 소상히 알렸을 것이다. 구례뿐이었을까. 구례를 알려면 섬진강 물길을 알아야 했고, 지리산의 지형을 알아야 했다. 섬진강은 왜적의 주요 통로였다. 당시에는 강이 길 역할을 했다. 섬나라 일본의 수군은 물길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섬진강을 알려면 또 남해를 알아야 한다. 바다에서 섬진강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하동과 광양이 있고, 순천과 여수가 있다. 이순신은 지난 7년간 그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뒤 헤어진 두 사람은 그러나 자신들이 불과 70여 일 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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