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상간녀변호사 [기자칼럼]‘코드 인사’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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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에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황교익씨가 취임하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전직 연구자 등을 포함한 500여명이 비판 성명을 냈다. 문화·관광 정책 연구를 총괄하는 기관 수장으로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공모 절차가 불투명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들끓는다.
지난 10일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에 임명된 서승만씨, 그보다 앞서 정동극장 이사장에 선임된 장동직씨를 둘러싼 논란도 다르지 않다. 과거 공개적인 정치 활동 이력이 있는 친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문화계 요직에 임명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문화예술계 인사가 전문성과 신뢰를 훼손하는 보은성 인사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공공기관, 그중에서도 유독 문화기관 수장 자리가 정권의 사유물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실제로 장관 인선부터 산하기관장 임명까지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성 논란이 반복됐고, 그때마다 기준과 절차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공공 문화기관은 단순한 행정 조직이 아니라 대한민국 예술 생태계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그 조직을 책임지는 기관장 자리가 논공행상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는 순간 문화 창작 환경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현장 예술인들이 “낙하산 인사는 한 사람의 자리 문제가 아니라, 그 기관과 연결된 예술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생태계 전체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정부와 여당은 다양한 배경의 인사를 통해 문화정책 외연을 넓히겠다고 하지만 다양성이 전문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수십억원의 예산과 국가 문화정책을 다루는 기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경험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반복적으로 기용하면서 “결과로 평가받으면 된다”는 식의 접근은, 공공 행정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반발의 목소리가 진보 정부에 우호적인 문화예술계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현장의 신뢰가 실제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보 성향 문화단체인 문화연대는 청와대 앞 규탄 기자회견을 예고하며 “전문성보다 인지도, 역량보다 관계가 우선하는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온 ‘코드 인사’의 악습은 슬프게도 익숙하다. 문제는 익숙함이 정당성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정부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현 정부가 내세운 공정의 가치를 스스로 허무는 자해에 가깝다.
인사는 곧 정책이다. 그 출발점이 신뢰를 잃는 순간, 아무리 화려한 ‘K컬처’의 성과를 말해도 공허하다. 포상과 보은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기준으로 인사를 하라.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 인사는 정권의 자산이 아니라 문화적 손실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2월 발표된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0명. 2021년 이후 4년 만에 0.8명대로 올라섰고, 올 1월 월간 수치는 0.99명으로 1명 선에 다가섰다. 지난해 쿠르츠게작트의 ‘South Korea is Over’가 돌던 때의 우울함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소멸’을 습관처럼 붙이던 정부·학계 행사에도 뭐라도 해보자는 기운이 끼어들었다. 해석은 엇갈린다. 연간 20조원의 저출생 예산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쪽과, 팬데믹으로 미뤄둔 혼인 수요가 뒤늦게 몰린 일시적 효과라는 쪽이 맞선다. 후자라면 곧 평균으로 수렴한다는 뜻이어서, 지금의 반등은 오래가기 어렵다.
거칠게 나눠 출산정책의 대상은 셋이다. 여건이 되고 희망하는 가정, 희망하지만 여건이 어려운 가정, 희망하지 않는 가정·개인. 정부와 지자체는 수년간 난임치료비 지원을 확대했다. 이제 평일 새벽 출근 전 진료를 받으려는 여성들의 난임전문병원 앞 행렬은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집단엔 부모급여·첫만남이용권·신생아 특례대출처럼 주거·양육비 보조가 집중된다. 신생아를 키울 때까지의 양육비 지원과 주거 지원의 효과도 분명하게 목격된다.
쟁점은 세 번째 집단과 어떻게 마주할 것이냐다. 결혼한 부부에게 쏠리는 지원은 비혼 시민에게 ‘싱글세’가 되고, 상위 계층까지 닿는 혜택은 아이를 매개로 계급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맞물린다. 국회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이 두 시민의 자유 결합에 결혼과 동등한 위상을 부여하면 정당성은 강해지겠지만, 그럼에도 “왜 낳으라 강요하느냐”는 반발은 남는다. 분명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들의 선택권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저출생의 딜레마 벗어날 길 없어
그럼에도 국가와 사회의 관점에서 아이는 태어나야 한다는 게 구조적 어려움이다. 합계출산율 2.1명이 정답은 아니고 동아시아·선진국 공통 현상이라는 말도 맞으나, 그 공통성이 한국의 구조적 압력을 면제해주진 않는다. 인공지능(AI)·로봇이 일자리를 아무리 줄인다 해도 최소한의 인력은 필요하다. 게다가 일하는 시민이 내는 연금과 세금이 고령자를 부양한다. 60대의 정년 연장도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다음 세대가 태어나지 않으면 미봉책이다. 이주가 대안으로 거론되나 체류 외국인은 이미 인구의 5%를 넘었고, 빈자리를 이주로 메우자면 이민자의 나라 미국도 못해본 규모의 사회적 실험이 필요하다.
경쟁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베이비부머의 부모 세대는 다섯 넘는 자녀 가운데 한둘이 성공해 식구를 건사하는 그림을 그렸고, 집안 대표끼리 전국적 경쟁은 치열해도 가정 안에는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저출생 시대에는 한 집에 한 명 낳는 경쟁이라, 그 한 명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는 게임이 되어 가족 단위의 여지가 사라진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시민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생산이 멎으면 연금과 돌봄의 재정 기반, 자기 노년이 흔들린다. 이 딜레마에서 멋지게 벗어날 방법은 안타깝지만 없다.
비혼출산에 기혼출산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주자는 제안이 있다. 2024년 혼외 출생아 비중은 5.8%로 역대 최고이고 정부도 그 방향을 시사했다. 도움은 되겠지만, 부동산·세제 혜택을 노려 혼인신고를 미루다 출산 시점에야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이 조치만으로 유의미한 반등을 낼지는 의문이다. 성소수자의 체외수정·대리임신 쟁점도 떠오르지만, 이는 제3세계 여성 착취와 국내 불평등에 얽힌 별개의 사안이다.
결국 정부는 아이를 원하는 이들에게 재산 여하와 무관하게 지원하고, 불평등이 우려되는 지점에선 고소득자 혜택을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기운을 빼는 것은 양극단의 목소리다. 한쪽은 저출생 정책이 불평등을 은폐한다며 ‘그 돈을 불평등 해소에 쓰라’고, 다른 쪽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출산 의사를 꺾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재원은 원활한 국민경제의 순환에서 나온다. 페미니즘을 규탄한다고 청년들이 마음을 바꾸진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는 안 풀리고, 그 와중에 혐오만 재생산된다.
대안과 비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획기적 대안으로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저출생이 그렇다. 사회 전체의 모순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고 양보하고 감수하고 마음을 열어야 하는 문제다. 여전히 세상이 나아지길 바라고, 공동체의 존립이 고민되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파국만 논하며 자극할 게 아니라 대안과 비전을 보여주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며, 귀 기울이며 조율하려는 태도를 청년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정부 기관에 용역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보고서를 담은 CD 세 장을 납품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계약서를 다시 보니 ‘용역 결과물 CD 세 장 제출’이라고 적혀 있었다. USB에 담아서 제출할 수 있는지 통사정을 해보았다. 계약서에 ‘CD 세 장 제출’이라는 문구가 있어서 곤란하다면서도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그럼 USB 세 개 제출로 갈음하시죠.”
굳이 세 개가 필요한가 묻고 싶었지만, 괜히 말 꺼냈다가 마음이 바뀔까봐 그대로 납품했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우리는 종종 일본 공공기관이 아직도 팩스를 쓴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정보, 즉 머신리더블 데이터다. 하지만 공공문서는 여전히 예전 관행대로 ‘군대 차트’처럼 만드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셀병합이다. 공무원은 셀을 병합하느라 날을 새우고, 분석하는 사람은 그 병합을 풀어내느라 밤을 새운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셀병합을 줄이겠다고 한 것은 긍정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 하나의 셀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야 한다. 수치와 설명, 증감률을 한 셀에 함께 넣으면 안 된다. 별도의 셀에 담아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AI만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도 좋다. 장애인이 쉽게 접근하는(BF) 조치가 노약자는 물론 비장애인 모두를 편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공식 예산서 형식을 바꾸기를 제안한다.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공식 예산서를 보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아무도 없다. 이는 AI가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숙련된 인간 전문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일련번호와 사업명, 그리고 예산액이 하나의 셀 안에 들어 있다. 그리고 하나의 셀처럼 보이는 셀 안에 많은 병합된 숨겨진 선이 존재한다. 예쁜 표를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만든 표가 특별히 예쁘지도 않다.
물론, 정부는 국회에 제출하는 공식 예산서와 별개로 기획예산처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열린재정)에서 API 형태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즉, 분석 가능한 데이터는 따로 만들고, 공식 예산서는 또 따로 만드는 셈이다. 왜 같은 작업을 두 번 하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공식 예산서 형식을 AI와 사람이 모두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분석 가능한 데이터 형식으로 통일하자.
이왕 통일하는 김에 더 근본적인 통일을 해보자. 현재 우리나라 재정의 기본 기준인 총지출, 총수입, 통합재정수지, 관리재정수지 등은 모두 우리나라 재정당국이 만든 국내용 기준이다. 기획예산처는 국내용 기준과 별도로 국제기준에 따라 작성한 통계지표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제출한다. 그러니 두 번 일하지 말고 국제기준으로 분석 가능한 상세한 자료를 하나만 만들자. 이 자료로 국제용, 국내 공식용, 국내 비공식용으로 통일하자.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가장 좋다.
지금은 국제기준으로 만든 국제용, 보기 불편한 국내용 공식 자료, 보기 편한 국내용 비공식 자료를 각각 만들고 있다. 비효율일 뿐만 아니라 수치가 뒤섞인다.
이러한 테크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관된 기준에 따른 정보 생산이다. 최근 고유가 대응을 위한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 두 번째 추경이다. 정부는 지난해 30조5000억원, 올해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재정 지출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추경 규모가 실제 증가한 총지출 규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30조5000억원의 ‘추경 규모’에 따른 총지출 규모는 14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추경 규모’는 26조2000억원이지만 증가한 총지출액은 25조2000억원이다.
정부는 추경 규모를 발표하면서 일관성 없는 추경 규모를 정한다. 어떤 때는 국채상환 규모를 포함하기도, 빼기도 한다. 어떤 때는 순증액을, 또는 총증액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정부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규모를 임의로 발표하니 AI는 물론 국민도 실제 증가하는 재정 규모를 알 수가 없다. 추경 규모는 그냥 총지출 증가액으로 통일하자. 만약 기준을 바꾼다면 과거 수치도 소급 적용해 연도 간 비교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그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숫자를 발표하지만 기준은 숨긴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를 보고도 현실을 알 수 없다. 같은 숫자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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