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검사출신변호사 부·울·경, 국힘 중심 막판 보수 결집?···승부처 놓고 커지는 여당 긴장감, 경남 특히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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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수 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이 겨루는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박형준 현 시장이 지난 11일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후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KBS부산총국 의뢰로 부산 거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7~19일 조사해 2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전 의원 40%, 박 시장 34%로 나타났다. 박 시장의 후보 확정 후 나온 여론조사 중 첫 오차범위(±3.1%포인트) 내 격차다. 정이한 개혁신당 후보 지지율은 1%였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거나 모르겠다고 답한 비율은 24%여서 향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까지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 안팎에서 머물렀다. 박 시장의 후보 확정 직후 JTBC가 메타보이스·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1~12일 부산 성인 8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 의원 지지는 45%, 박 시장 35%로 10%포인트 차이가 나타났다. 지난 12~13일 부산MBC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부산시민 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전 의원 48%, 박 시장 35.2%로 12.8%포인트 격차가 나타났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후보 확정에 따른 단기적 상황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A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민주당은 후보가 일찍 결정됐고, 국민의힘은 후보가 늦게 결정된 데 따른 단기적 컨벤션 효과가 부분적으로 반영됐다”며 “부산은 항상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이긴 적이 없고, 마지막까지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울산은 김상욱 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김두겸 울산시장 간 격차가 10%포인트 안팎으로 나타나며 김상욱 의원이 앞서고 있지만, 현 울산 동구청장인 김종훈 진보당 울산시장 예비후보와의 단일화가 풀어야 할 과제다. 진보당 내에서도 울산 지역 구청장 자리를 놓고 시장 단일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김재연 상임대표가 출마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구인 경기 평택을에서의 선거연대 문제도 함께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경남은 부·울·경 세 곳 중 민주당 위기감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경남은 민주당 경남지사 후보인 김경수 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과 국민의힘 소속 박완수 경남지사 간 대진표가 일찌감치 확정됐는데, 두 후보 간 격차가 세 지역 중 가장 적다. 일부 조사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세계일보 의뢰를 받아 지난 7~8일 경남에 사는 성인 806명으로 조사한 결과 김 전 위원장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4%, 박 시장은 40%로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4%포인트에 불과했다.
경남에서는 산업단지가 많은 창원 등이 민주당 지지가 높은 지역이지만 경쟁자인 박 후보가 초대 창원시장을 지낸 경험이 있는 점 등이 불리한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B의원은 “박 후보는 원래 근거지가 창원”이라며 “창원이 민주노동당, 정의당 본산이고 진보 성향이 짙은 지역이었는데 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A의원은 “부·울·경은 상당히 민감한 사안들이 요소요소에 잠복해 있다”며 “여당은 겸손하게 해야지 마치 선거에서 다 이긴 것처럼 하면 바로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직 경남 도민들이 마음을 다 정하지 않아 다른 지역보다 무당층이 많은 걸로 파악한다”며 “부·울·경 중 민주당이 가장 집중해야 할 지역은 경남”이라고 말했다.
부산시장 관련 한국리서치와 메타보이스·글로벌리서치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부산MBC·KSOI 여론조사는 자동응답(ARS) 조사로 실시됐다. 경남지사 관련 한국갤럽 조사는 전화면접조사로 실시됐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위로 ‘골든’의 전주가 흐르자 할리우드 배우들은 K팝 응원봉을 흔들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거머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가수 이재가 무대에 올랐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곳으로 모였다.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던 순백의 드레스였다. 대한제국 황실 대례복에서 출발한 디자인, 신라 금관을 연상시키는 장식, 전통 공예 방식 등이 결합한 의상은 한국의 역사와 현재의 K패션이 교차한 결과물이었다.
한국적 서사를 무대 의상으로 재구성한 작업은 패션 브랜드 르쥬 디자이너 제양모·강주형,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비롯됐다. 제 디자이너는 한때 사학자를 꿈꿨고, 강 디자이너는 음악가를 지망했다.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시선이 지금의 르쥬를 만든 셈이다.
‘케데헌’ 가수 이재 오스카 드레스 디자인독립운동가 김가진의 황실 대례복서 출발
역사 자료 수집하고 음악적 움직임 부여“한국적인 것 담아내려는 방향성 일치해”
지난 8일 서울 남산 인근의 르쥬 쇼룸에서 만난 두 디자이너는 브랜드 이야기를 ‘패션’이라는 단어에만 가두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와 음악, 전통과 현대를 이 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을 공부하며 만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의 궤적 속에서 접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제 디자이너에게 옷은 ‘기록’에 가깝다.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사학자를 꿈꿨다. “역사 공부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선생님께서 ‘옷을 좋아하니 유럽에서 패션을 공부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하셨죠.” 옷을 좋아하는 감각은 그를 국내 대학 대신, 파리로 이끌었다.
강 디자이너의 출발점은 음악이다. 트럼펫을 전공하며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던 그는 우연히 본 패션쇼를 계기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옷을 넘어 무대 구성과 흐름이 크게 다가왔어요. 대학 진학 대신 바로 군악대로 입대해 병역 의무를 다하고 파리 패션 대학으로 향했죠.”
두 사람은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예술적 시각을 넓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입시에서 정형화된 미술 실기를 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 패션 대학에서는 입학한 뒤에 드로잉 등 기초부터 배운다”면서 “틀에 박힌 시각을 멀리하는 프랑스 패션 교육에 오히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리에서의 교육은 두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자기만의 색’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이들은 파리의 패션 하우스 알라이아, 랑방, 발망 등에서 인턴과 실무 경험을 쌓으며 각자의 기반을 다졌고, 2020년 패션 브랜드 ‘르쥬’를 설립했다. 르쥬(LE JE)는 프랑스어로 ‘나 자신’을 뜻하는 말에서 출발한 이름이다. 파리 패션계에서 이방인 예술가로 ‘진짜 나’를 찾아 나선 철학적 질문을 브랜드명에 녹인 것이다.
르쥬의 발자취는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맥락을 읽어내는 습관은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지금도 제 디자이너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미술 상가를 찾거나, 오래된 논문과 도록을 수집하며 레퍼런스를 축적한다. 실제로 오스카 의상 작업 역시 특정 시대 복식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출발했다.
이재의 드레스는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순백색을 바탕으로, 무궁화 문양을 중심에 배치했다. 영감은 대한제국 2등 칙임관 대례복을 입은 독립운동가 김가진의 초상이다. 조선 말기 관료였던 그는 국권이 흔들리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말년에는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활동에 헌신했다. 르쥬 측은 “당대의 권위와 상징을 몸에 두른 인물이 독립운동을 위해 길을 나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자신의 자리에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재의 행보와도 어딘가 닮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서사는 디자인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 공예를 통해 입체적으로 구현됐다. 노래 제목 ‘골든(Golden)’에 맞춰 신라 금관을 연상시키는 금빛 장식을 입혔다. 두석장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금속 공예였다.
공예품을 옷 위에 구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금속의 무게와 착용 방식, 움직임에 따른 안정성까지 새롭게 설계해야 했다. 공예를 ‘입는 형태’로 변형하는 작업에 대해 장인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두 사람은 “60~70대 장인들께서 이제는 오히려 우리와의 작업을 기대한다”고 했다.
강 디자이너의 음악적 감각은 무대 위 의상을 더 빛나게 했다. 그는 “무대에서는 옷이 정지된 상태로 보이지 않는다”며 “움직임, 조명, 동선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르쥬의 의상은 입체 재단과 패턴 설계를 통해 안무에 맞춰 움직이도록 구성됐다. 두 디자이너는 미국까지 직접 동행하며 계단 동선과 퍼포먼스를 고려해 여러 버전으로 의상을 제작하고 완성도를 높였다. 제니, 르세라핌, 엔하이픈 등 K팝 스타들이 그들에게 의상을 믿고 맡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르쥬에 ‘한국적’이라는 개념은 전통의 재현과는 거리가 있다. 제 디자이너는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그 안에 담긴 감각과 태도를 지금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출발점은 때로 충돌을 만든다. 소재와 실루엣을 두고 의견이 갈릴 때도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가지에서는 늘 합의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는 철학, 이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어요.” 르쥬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패션으로 기록하고 있다.
채연이가 일어섰다. 굳어있던 무릎에 힘이 실리고, 허리가 펴졌다.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올려만 보던 아이의 시선이 천천히 높아졌다. 무릎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얼굴로. 마침내 시선이 멈춘 곳에 어느새 키가 비슷해진 엄마가 서 있었다. 돌 무렵이면 두 발로 서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채연이에겐 열두 해가 더 걸린 눈 맞춤이었다. 빙그레 웃음을 띤 채연이가 엄마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3층 로봇재활치료실. 혼자서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채연이를 일으켜 세운 건 보행로봇 ‘밤비니 틴즈’였다. 웨어러블(입는) 로봇인 밤비니 틴즈는 허리·골반·무릎 등 관절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아이의 힘을 감지하고, 부족한 동작을 거들어준다. 등 뒤에서 로봇을 단단히 움켜쥔 치료사 선생님 구호에 맞춰 한 발 한 발 나아가던 채연이는 땅에 닿는 느낌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2016년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시민, 기업, 지자체 기부로 장애 어린이를 위해 설립된 이 병원은 오는 28일이면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시민 1만명과 500개 기업이 뜻을 모아 설립한 이 곳에서 장애 아동들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있다.
병원 정문을 지나 2층 재활치료센터로 향했다. 벽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유아차와 휠체어가 눈에 띄었다. 걷지 못하는 아이, 몸을 가누기 힘든 아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 아직 서툰 아이들이 주인이다. 복도 끝 물리치료실 안에는 파란 매트와 낮은 나무 평상, 작은 철봉과 균형 도구가 바둑판처럼 놓여 있었다. 치료사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붙어 굳은 팔다리를 하나씩 눌러 펴고, 매트 위에 아이를 눕힌 채 관절 하나하나를 움직였다. 제멋대로 굳어버린 다리를 펴고, 잠들어 있던 근육을 깨우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더욱 고되다. 물리치료실은 병원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가장 많이 새어나오는 곳이다.
낯설고 고된 과정을 딛고 아이들은 조금씩 자란다. 지아(가명)는 2023년 초극소 미숙아로 태어나 심장수술을 받고 1년 넘게 목에 구멍을 뚫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지냈다. 이 병원에서 물리·감각통합치료 등을 받으며 두 돌 생일날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최근에는 계단도 스스로 오르기 시작했다. 지아는 지난달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해 친구를 사귀었다.
세 살 때 뇌혈관이 얇아지는 희소병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고 뇌수술을 받은 서진이는 한때 오른쪽 팔다리를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오른손잡이였던 아이는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옷을 입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서진이는 6층 작업치료실에서는 ‘잊힌 손’을 다시 일상으로 불러내기 위해 양손 협응 집중훈련인 ‘오손두손(HABIT)’ 치료를 받고 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집게로 물건을 쥐고, 치료사 선생님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서진이는 오른손 감각을 조금씩 깨워가는 중이다.
채연이가 걸음을 익힌 3층 로봇재활치료실에는 5대의 로봇이 있다. 고정형 보행로봇 로코맷·모닝워크·워크봇과 웨어러블형 로봇 엔젤렉스·밤비니틴즈다. 아이들은 로봇과 함께 발바닥으로 바닥을 딛는 감각부터 체중을 싣고 중심을 옮기는 법, 무릎을 펴고 한 발을 앞으로 내미는 순서를 배운다. 치료사들이 로봇 뒤에 붙어 아이들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돕는다. 홍지연 푸르메어린재활병원 부원장은 “수동적인 훈련을 스스로 걷고자 하는 ‘능동적인 재활’로 바꾸는 것”이라며 “남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겐 엄청난 행복이자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3층 치료실 안에서 걷는 연습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웨어러블 로봇을 입은 채 1층으로 내려가 어린이도서관을 방문하거나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 등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해 보기도 했다. 걷는 연습은 곧 ‘스스로 움직이고 선택하는 감각’을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적을 향한 문은 좁다. 병원 1층 카페에 앉아 있는 부모들 대화는 기승전 ‘대기’로 수렴한다. “○○이, 이번에 그 병원 대기 걸었어요?”라는 안부 물음엔 소아재활의 뼈아픈 현실이 녹아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와 끝없이 밀려드는 대기 환자 탓에, 병원들은 아이가 한 번에 입원이나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한을 ‘6개월’ 남짓으로 제한한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병원이 받는 진료비가 줄어드는 구조다.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나야 하는 부모들은 스스로를 ‘재활 난민’ 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낮병동’ 자리를 제때 얻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외래 진료로 치료를 하나씩 예약해 다녀야 하는 일반 진료와 달리, ‘낮병동’은 아이를 병원에 등록하고 하루 6시간씩 물리·작업·언어치료 등을 집중적으로 받는 프로그램이기에 인기가 높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낮병동 대기자는 150명, 평균대기 기간은 6개월이다. 하지만 간신히 자리를 얻어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부모들은 6개월 뒤 떠날 다음 병원을 찾아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바쁘다.
떠나야 하는 아이들을 보는 의료진의 마음은 더욱 착잡하다. 홍 부원장은 “치료를 이어가면 ‘확실히 좋아지겠다’ 싶어도, 밖에서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면 연장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아이들이 치료사와 신뢰를 쌓고 적응하는 데만 한 달 가까이 걸리는데, 이제 호흡이 맞아 집중적으로 치료해볼까 싶으면 어느덧 퇴원 시기가 다가와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부모들은 아이가 한 번이라도 더 몸을 펴고, 걷게 하고 싶은 마음에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약 취소가 생기면 발생하는 빈자리를 잡기 위해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 당일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다. 채연이 어머니는 임진각에서, 서진이 어머니는 파주에서 서울 마포까지 매일 병원을 출근하듯 오간다고 했다.
아이들은 30분·50분 치료를 받고 휴식을 한다. 부모는 휴식 시간이면 아이를 먹이고 달래며 보살펴야 하기에 병원에 오는 날은 숨 돌릴 틈도 없다. 그럼에도 이 고단한 나날이 단 하루라도 연장되길 간절히 바란다. 서진이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간절한 마음을 토로했다. “추가금을 내서라도 아이를 더 치료받게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다는걸 아니까 그럴 수 없어요. 5월 중순이면 치료프로그램이 끝나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18세 미만 등록 장애아동 9만2094명 중 40.9%인 3만7675명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거주한다. 소아재활 수요의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밀집돼 있지만 서울과 경기 권역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단 두 곳이다.
지방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가 전국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료센터 13곳을 짓거나 지정했지만, 올해 4월 기준 문을 연 곳은 10곳뿐이다. 경남 창원, 전북 전주, 경북 안동 등은 여전히 개원을 기다리고 있다. 설령 문을 열었더라도 인력난은 심각하다. 지방의 공공재활기관 중에는 전문의가 단 1명뿐인 곳이 대부분이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전문의 7명과 치료사 120~130명 규모의 인력을 갖추고 있다. 증상별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장애 어린이에게 특화된 치료를 제공한다. 지방 부모들은 ‘재활 상경’의 수고로움도 감수하며 이 곳을 찾는다.
하지만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개원 이래 한 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2024년 보건복지부의 ‘제2기 어린이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에 선정되기 전까지 매년 40억원 안팎, 코로나19 시기에는 5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시범사업 수가가 더해진 뒤에도 의료수입 대비 연간 손실은 25억~30억원 수준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운영 보조금은 병원 1년 예산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진료 수입과 시민·기업의 기부금으로 메운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로는 장애 어린이에게 수준 높은 재활 치료를 제공하더라도 적자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채연이가 받는 로봇보행치료의 건강보험 수가는 1회 1만7100원이다. 3~4억원짜리 고정형 로봇에 치료사 1명이 1대1로 붙어 한 시간 가까이 아이를 돌보지만, 치료사가 맨손으로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일반 보행치료와 같은 금액으로 청구된다. 어린이용 로봇보행 치료 자체에 매겨진 전용 수가가 없기 때문이다. 3~4억원대 로봇들은 모두 넥슨과 여러 재단의 후원으로 구매했다. 민간의 헌신으로 세워진 병원이, 다시 민간의 헌신으로 첨단 치료를 유지하는 구조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치료 기회도 오래 열려 있지 않다.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어린이 병원 치료 대상은 만 18세 미만이다. 생일이 지나는 순간 아이는 ‘어린이 재활’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복지부는 연계 시스템이 있다고 설명한다. 성인 재활을 위해 권역재활병원 7곳과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71곳을 별도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권역재활병원 등은 뇌졸중·척수손상처럼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은 성인 환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발병 직후 몇 달간 집중 재활이 목표인 ‘회복기’ 병원에 선천적 장애로 평생 재활을 받아온 아이를 이어 보내기란 쉽지 않다. 한 재활병원 의사는 “성인 재활을 맡는 의사나 치료사는 소아를 본 적이 없어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며 “평생 재활을 받아온 아이들이 먼저 눈치채고,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채연이가 엄마와 눈을 맞추며 내디딘 걸음에는 시한이 있다. 2013년생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6년 남짓. 그 사이 채연이는 한 아이당 20회로 제한된 로봇치료를 받기 위해 치료가 끝날 때 마다 대기 명단 맨 아래에 다시 이름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재활’의 바깥으로 밀려났을 때, 채연이의 다음 한 걸음을 어디에서 받아줄지는 알 수 없다. 치료가 끝난 채연이는 “몸이 쭉쭉 펴져서 재밌었어요. 또 걸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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