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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세속성자 주일예배
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2025년 대림절부터는 매주 주일뿐 아니라 성탄절과 성금요일 등 주요 절기 예배문도 함께 발행합니다.
사순절 넷째 주일 / 강단색: 보라색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빛 되신 주님 앞에서 맑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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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진리의 하나님, 주님은 밝은 빛으로 세상을 비추시어 우리가 켜켜이 쌓아 놓은 편견들을 거두시고 모든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더 이상 그림자 아래 머물러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손오공게임 우리 자신을 드러내며 빛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그 빛이 드러내고 가리키는 바를 담대하게 증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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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우리들의 밝은 빛 /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찬 569장)
본문
삼상 16:1-13, 시 23, 엡 5:8-14, 요 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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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각장애인이 다시 보게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히브리 성서에는 종종 장애를 죄와 연관 지어 설명하는 구절이 발견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은 부모의 죄가 3~4대까지 영향을 미칠 수 릴게임예시 있다고 말하며, 레위기는 장애가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지요. 또 일부 유대 랍비 전통에서는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자마자 그의 장애가 어떤 연유에서 생긴 것인지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장애가 그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장애를 죄의 결과로 바라보는 생각 그 자체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교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 대신 율법과 경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할 필요를 느끼지요.
이 과정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너머의 사랑에 대해 말했고, 예수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의 주임을 고백했으니까요.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신앙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인들은 회당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본문에는 바로 그러한 갈등과 분리의 경험이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눈을 뜨게 된 사람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상징으로 읽게 되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훨씬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요한복음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시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일을 가리키는 중요한 은유로 사용됩니다.
'본다'는 것이 하나의 은유라는 것은 눈을 뜨게 된 사람이 예수를 누구로 고백하는지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예수라 하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매우 담백하고 조심스러운 답변입니다. 이후 바리새인들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그는 예수를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그 표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회당에서 쫓겨난 후,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마침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게 된 긴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본문의 막바지에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쫓겨난 사람을 찾아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눈이 먼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본다'는 것이 새로운 인식과 깨달음에 관한 것임을 다시 한번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장애에 관한 치유 이야기로 읽어온 데에는 성서일과가 정해 놓은 본문 범위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9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장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에 대해 말씀하시며, 양들은 참된 목자의 목소리만 알아듣는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한다면 오늘 이야기가 단순한 치유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지지요.
오늘 본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눈을 뜨게 된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하고 분명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사람들의 질문에 그저 짧게 대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의 대사는 점점 길어지고, 어조는 점점 더 단호해집니다. 바리새인들이 계속해서 따져 묻자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습니다.
"여러분도 그의 제자가 되려는 것입니까?"라는 그의 말에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담대함과 용기가 서려 있습니다. 오랫동안 잠자코 침묵해 왔을지도 모르는 그는 더 이상 침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말하기를 독점해 온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그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분명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시각장애인이 다시 보게 되는 이야기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본다고 믿는 사람이 실제로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진실을 깨닫게 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침묵을 깨고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사순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일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정말로 보게 되었다면, 우리 역시 더 분명한 목소리로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장운영 / 당인리교회
https://www.newsnjoy.or.kr
청어람ARMC newsnjoy@newsnjoy.or.kr
청어람ARMC가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2025년 대림절부터는 매주 주일뿐 아니라 성탄절과 성금요일 등 주요 절기 예배문도 함께 발행합니다.
사순절 넷째 주일 / 강단색: 보라색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빛 되신 주님 앞에서 맑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주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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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하나님, 주님은 밝은 빛으로 세상을 비추시어 우리가 켜켜이 쌓아 놓은 편견들을 거두시고 모든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더 이상 그림자 아래 머물러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손오공게임 우리 자신을 드러내며 빛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고 그 빛이 드러내고 가리키는 바를 담대하게 증언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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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본문의 서두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합니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자마자 그의 장애가 어떤 연유에서 생긴 것인지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장애가 그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장애를 죄의 결과로 바라보는 생각 그 자체를 거부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교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성전 중심의 신앙 대신 율법과 경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할 필요를 느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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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으로 인해 눈을 뜨게 된 사람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상징으로 읽게 되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훨씬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요한복음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시각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새롭게 인식하는 일을 가리키는 중요한 은유로 사용됩니다.
'본다'는 것이 하나의 은유라는 것은 눈을 뜨게 된 사람이 예수를 누구로 고백하는지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예수라 하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매우 담백하고 조심스러운 답변입니다. 이후 바리새인들과의 첫 번째 만남에서 그는 예수를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그 표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회당에서 쫓겨난 후,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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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영 / 당인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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